[영화] 죽여주는 여자(The Bacchus Lady)

이재용 감독(2016) /한 모금의 환희와 한 모금의 죽음

by bak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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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라고 불리는 소영(윤여정)에 대해 말한다.

도도하게 눈을 내리깔며 "연애하실래요?"라는 말과 함께 박카스를 건네받은 할아버지들은 '죽여주는 여자'와 4만 원짜리 짧은 연애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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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영화의 톤이나 분위기가 내 감정을 많이 좌우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가 기억에 오롯이 남는다.

윤여정이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되새김질했다.

'죽여주는 여자'일 때의 소영의 표정은 관능적이다. 치켜든 턱과 도도하게 그려낸 눈매, 새빨간 입술은 종로의 뭇 할아버지들을 설레게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관능적인 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 애초에 '관능', '섹시'와 '할머니'라는 단어를 연결 지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소영의 표정을 봤을 때 거부감 혹은 약간의 역겨움도 느꼈다.

영화관을 가득 매운 할아버지의 신음과 새빨간 모텔방 불빛의 조화를 보았을 땐, 인간은 어쩌자고 저런 본능을 가지고, 또 저렇게나 바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모든 게 역했다. 윤여정이 그 장면 때문에 감독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백번 공감한다. 나라면 후드려 패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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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미로 '죽여주는 여자'일 때의 소영은 수줍고, 착하고 그리고 지쳐있다. 무언가를 설명하지도,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꾸역꾸역 살아간다. 주문 도와드리겠다는 직원의 말에

"안 도와줘도 돼요, 돈 내줄 것도 아니면서 뭘 도와준대"라는 넋두리를 뱉는다.

소영은 가끔 아무도 듣지 않을 푸념을 한숨처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되묻지도 주의 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늙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누구도 주의 깊게 나이 듦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해버린다. 나는 그것이 아직 아픈데, 소영은 그마저도 담담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소영이의 태도가 내 마음을 죄어왔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이 영화에서 눈물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단지 영화는 '그럼에도'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할 뿐이다. 내가 뭐라고 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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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의 영어 제목은 The Bacchus Lady이다.


Bacchus는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

미켈란젤로 디 카라바조의 청년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포도주의 신 바쿠스에 젊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부여하여 세속적인 신, 인간의 모습을 닮은 신의 모습을 창출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묘사되는 신의 표정과는 조금 어긋난 이 그림은 신임에도 취한 모습과 앳된 외모, 관능적인 표정이 인상적이다.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무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뜻하는 것으로 그림에서 좀처럼 소재로 삼지 않았다. 더군다나 술의 신이며 풍요와 축제의 신이니 바쿠스에게 썩은 과일을 배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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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추하든 아름답든 있는 그대로를 그리겠다'는 그의 자연주의 예술관은 이상화된 현실이 아닌 현실 그 자체를 마치 보는 사람의 눈앞에서 활짝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출처_네이버 지식백과_Bacchus]



바커스에 대해 찾아보고 감독의 언어유희적 재치나 그 의도에 감탄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을 찍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보고는 소영은 말한다.

"왜 이런 거 찍어? 돈 되는 거 해 돈. 사랑 얘기 같은 거 있잖아."

이 대사 자체가 감독 자신에게 하는 말이며, 카라바조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충분한 답변인 것 같다.

퍼즐처럼 연결되는 장면과 제목의 관계의 발견에 짜릿하다가도 그 현실에 다시 무기력한 감정이 든다.

영화를 찍어도, 사회의 썩은 면을 자각을 하여도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개인은, 더욱이 소수는 어찌할 바가 없다. 살아가고 꾸역꾸역 나이를 먹을 뿐이다. 결국 점이 되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무연고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다. 단지 조금 더, 혹은 덜 비참하게 사라질 뿐이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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