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Ayoade(2013) / HowcanIbemyself
리처드 아요데는 감독보다는 영국 시트콤 'IT Crowd'의 지질하고 귀여운(?) 모스 역으로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영화를 만들었다니, 반갑고 신기했다.
나 역시 IT Crowd의 모스로 기억하기에, 그가 연출과 각본을 맡은 더블의 분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우울했고, 멋있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모노톤이다. 적막하며 저변에 깔린 음악이 어딘가 음산하다.
영화 속의 사이먼(제시 아이젠버그)은 늘 우물쭈물하고, 제 잇속을 잘 챙기지 못한다.
그에게 돌아오는 말은 늘 '눈에 띄지 않아.', '안된다'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반항을 할 의지조차 없는 표정이다. 사이먼의 성격을 너무도 잘 표현해주는
제시 아이젠버그의 표정연기가 훌륭하다. 과장하지 않고, 변화가 있는 듯 없는 듯 미세하게 감정을 얼굴에 잘 그려낸다.
어두운 배경의 톤 덕분에 클로즈업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과 몸짓이 부각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엘리베이터마저 나를 외면하지만, 체념한 듯 쭈그러진(?)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화면에서 빛이 들었다 사라졌다 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그의 삶과 닮아 보인다.
어머니께 회사 홍보영상에 나온 자신을 보여주지만, 관심이 없다. 특히 사이먼의 "나였던 게 나죠."라는 한 마디는, 영화를 다 본 후에서야 다시금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기 위한 수많은 물음의 과정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고민하는 것을 사이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이먼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한나(미아 와시코브스카)는 같은 회사 복사실에서 일을 한다.
사이먼이 나오는 신에선 거의 빛이 바랜 색감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한나의 등장 신은 푸른빛이 은은하게 나타난다. 특히 복사기의 푸른 불빛에 비친 한나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 캐릭터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색으로 녹여내는 연출이 깔끔하고 좋았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아주 사랑하는 장면이다. 한나가 남긴 쪽지의 글을 본 사이먼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때 흘러나오는 Kyu Sakamoto의 Ue O Muite Aruko는 신선한 선곡이었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려고 이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하기도 했다.
그의 집에 하나뿐인 가구와 귀걸이를 물물 교환하는 모습이 애처롭고 감동적이다.
상점 안에서 TV를 들고 있는 그는 앙증맞아 보인다. 그러나 그 후의 일은..
아마 영화 속에서 사이먼이 가장 솔직했고, 말을 많이 했던 장면일 것이다.. 대사뿐만 아니라 제시 아이젠버그의 공허한 표정과 눈에 담긴 체념과 먹먹함 같은 것들이 마음에 사무친다.
난 눈에 띄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좋다. 말하기가 되었든 글쓰기가 되었든, 모든 것은 담백할 때가 좋다.
담백한 말과 글이 마음에 크게 와 닿는 이유는 그 간결한 문장 안에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쉽게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가 그렇다. 참으로 담담하고 간결하다.
우리는 그저 그가 만들어 놓은 뼈대 위에 각자 기억의 살들을 붙이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존재가 희미하다 느낀다면 괴로워한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더 어떤 면에서 중요했으면 좋겠고, 특별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기본적인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욕구가 진정한 자신을 갉아먹어 주객전도가 되는 것에 대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이라는 것이 나는 아직도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나'로서 살아가는 힘.
내가 나를 사랑하는 용기들이 무럭무럭 솟아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