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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Dec 28. 2021

작업실의 로망

홈작업실과 외부작업실

엊그제 지인 집에 놀러 다녀왔다. 본래도 참 정갈하게 잘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주택 옥상에 새로 만들어진 예쁜 유리 온실 작업실에는 볕이 찬란하게 들어왔다. 유리 온실이 그간 로망이었다며 하늘거리며 웃는 언니는 대화할수록 야무지고 참 단단한 사람이다. 식물원을 제외하고 유리 온실 자체를 처음 들어와 본 내 눈엔 하늘거리는 빛과 따스한 공기, 썬 캐쳐들도 모두 빛나게만 보였다. 무엇보다 주인과 너무 잘 어울렸다.


취미 활동이 많고 그림을 좋아하는 내게 언제나 작업실은 로망이었다. 깔끔하게 물건 정리를 못하는 성격에 올해 미싱까지 배우게 되면서, 집에는 굴러다니는 시침핀과 원단 쪼가리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곤 한다. 본래 작업실로 자리를 비워뒀던 지금 아파트의 큰 방에는 어느새 매트리스가 꽤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들어가는 순간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 출퇴근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다. 


감각적인 작업실을 가지겠다며 방방 뛴 것만 벌써 몇 개월째다. 결혼과 시기가 겹쳐 집을 이사하게 되면서 홈 작업실부터 먼저 준비하게 되었다. 내가 알파룸을 가질지, 일반룸을 가질지 아직 모르겠지만, 알파룸이라면 면적이 작아 그저 이젤과 협탁 테이블, 조명 정도만 둘 수 있다. 아무것도 없어야 집중도가 높은 걸 잘 알고 있기에, 그 정도도 사실 충분하다. 짐이 적으면 손님이 올 때 게스트룸으로도 쓸 수 있겠지.


남자 친구의 배려로 인해, 방 하나는 서재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서재 하나와 작업실 하나의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집에서 방 두 개나 양보하다니, 쉽지 않은 선택일 텐데 감사할 따름이다. 한 달 뒤부터는 서류와 웹 작업은 서재에서 하고 미술이나 공예 작업은 작업실에서 하면 딱 맞겠다 싶다. 작업실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다양한 주문과 일감들이 생겨야 할 참인데, 내년부터는 조금 더 기대해보기로 했다.


작업실의 로망은 초등학생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멋진 미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흩날린 채, 통유리를 통과해 보이는 예쁜 자연을 캔버스에 담으며 이젤 앞에 앉아있던 뒷모습이었다.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통유리가 전면에 보일 정도로 큰 공간을 가진 건물이 내 거였으면 한다는 게 조금 달라졌다고나 할까.


작업실은 공간이 클수록 좋다. 큰 그림들을 작업하기도 좋고, 전시하기도 편하며 무엇보다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좋다. 나는 큰 공간에 심플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데, 크고 높은 공간이 주는 가득한 공간감이 좋다. 창가에서는 밝은 햇볕이 쏟아지고 한 편에선 은은하고 따스한 간접조명이 어울린다면, 더 말할 것 없다. 딱 있을 것만 있는 호텔에서 머무르는 게 누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마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테이블은 절대 좁거나 작거나 낮아서는 안된다. 크면 클수록 좋고, 원목이 제일 좋으며, 이왕이면 누가 보더라도 때깔 좋은 테이블과 푹신한 의자가 꼭 있어야 한다. 테이블 위 유리병에는 사시사철 다른 생화들이 꽂혀 향을 풍겨야 한다. 이 테이블에서는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팀들과 문화를 기획하기도 하며, 혼자 조용히 글을 쓰기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음향이다. 차분한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라 재즈나 조용한 노래들이 울려 퍼져야 한다. 돈을 좀 들이더라도 좋은 스피커를 사용해야 한다. 나른하니 졸릴 때는 감성 힙합을 들으면서 작업하는 것도 꽤나 좋아한다. 성공욕 뿜 뿜 하는 그들의 에너지에 압도당해서 괜히 흥겨워지고는 한다. 어릴 때 다니던 미술학원에선 늘 클래식과 재즈가 나오곤 했었다. 그렇게 몇 년 듣고 나니, 취향이 그렇게 되었다. 


살면서 원하는 것들이 대부분 이루어진 편이라 생각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될 때까지 원하는 것이다. 될 때까지 바라고,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도 말해서 주변인들이 질려서일까,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기회가 타고 흘러와 나를 폭 싸안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일단 홈 작업실을 잘 꾸며놓고, 내년에는 멋들어진 외부 작업실도 꼭 구성하고, 예쁜 팀을 만들어 재밌고 창의적인 활동들을 할 것이다.


홈 작업실이 생기면 더 열심히 작업을 하게 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가정을 이루고, 태교에 집중할 때나 전시 혹은 공모전이 임박해서 정신없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나만의 공간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외부 작업실이 생기게 된다면 더 열심히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집에 늘어져 있는 것보다 밖의 카페에서 훨씬 생산적으로 살게 되듯이, 밖의 공간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집에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밖에선 보다 전문적이고 몰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해보고 싶다. 내부에선 주말이나 새벽, 이른 아침에도 잠옷을 입고도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하고 외부에서는 계절마다 인테리어와 차를 바꾸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창조적인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취미가 되었든 직업이 되었든, 언제나 잘 웃고 행복하게 즐기는 작업실이 나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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