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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Feb 27. 2022

타지에서 찾아드는 허망한 외로움

그러든지 말든지

큼직한 결혼 준비가 끝나간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둘이서 각자 두 손으로 일군 것들만으로 만들어진 신혼집에도 입주했다. 감사하게 받은 재화들은 아껴두었다. 볕 잘 들고 안락한 이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앞으로도 우린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용기가 솟구친다. 한창 바쁘다 바쁜 일들이 끝나고, 다시 침묵이 무거운 주말이 왔다. 분명 지금까지 기분 좋게 잘 지냈는데, 왜 이럴까. 돌아보니 이틀간 택이 말고 대화한 사람이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일요일 저녁, 오랜만에 또 묘하게 허망해진다. 현대사회에서 고향에 사는 또래가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 타지에 살면서 관계를 구축하고 가정을 이룰 것이다. 내향형은 이런 소도시에서도 살기가 참 좋겠지만, 외향형인 나는 주말 내 부지런히 카페도 가고, 넷플릭스도 몰아봤지만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다. 이런 시간이 좋으면서 또 아쉬워진다. 내향형인 택이도 심심하다며 플스를 샀다.




귀여운 동물이나 아이가 있으면 훨씬 나아지려나. 원래도 차분한 음악을 틀거나 조용히 생활하기도 하고, 교대근무인 택이가 침실에서 자고 있으니 집은 대부분 아주 조용하다. 하늘에 가까운 높은 층수라 생활소음도 없고, 오전 내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나는 앉아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한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니 나 혼자 하루에도 열몇 개씩 재잘거린다. 이걸 보는 친구들은 내가 이외에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없다는 걸 알까.




조그만 소도시에서도 시내권이 아닌 곳이라 누굴 부르기에도 접근성이 낮다. 다들 바빠 불러도 올 사람도 많지 않기는 하지만. 온전히 쉴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지만, 임신을 하게 된다면 이 침묵을 견딜 수 있을지 살짝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지. 웨딩촬영이나 본식 드레스를 셀렉하면서 헬퍼들은 내가 엄청 차분하다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아무래도 이렇게 살면 갈수록 차분해지는 거 같아요.




본가에서는 늘 넷이서 조잘조잘 떠들면서 살았는데, 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모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느라 바빴고. 이 지역에서도 친구를 적게 사귄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딱 30 살인만큼 개개인들은 다 바쁜 것 같다. 이 시간들이 외롭기만 한 건 아니지만, 외로울 때도 있다는 표현이 맞다. 어떻게 보면 온전히 혼자로써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하고 건강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 다시 바쁠 때가 된 것 같다. 아뜰리에를 만드는 게 로망이었는데, 3월 초의 창업지원사업에 써서 내볼 계획이다. 하고 싶은 건 뭐든 그냥 하는 게 맞고 제일 빠르다. 괜찮은 컨설팅이나 수업이 있으면 들어보고 싶은데 삼월 초인만큼 아직은 별로 없나 보다. 교육봉사나 청소년 멘토 봉사를 조금 해보고 싶었는데, 이 소도시에서는 할 수 있는 봉사도 다양하지 않다. 흠, 내가 그냥 만들어버릴까.




심심하면 모바일 부업도 슬슬 시작해보고, 늘 뒤로 미뤄뒀던 이모티콘 수업도 듣고 영상 기획도 해볼까 한다. 사실 뭔가 할 건 많은데 딱 이걸 해야겠다!라는 맘이 설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그럴 땐 그냥 내가 만드는 게 최고다. 3월엔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든지 말든지,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버리는 달을 만들어버려야지. 허망한 외로움이 오든지 말든지, 난 불도저처럼 나서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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