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May 29. 2022

카테고리가 없는 존재

자유는 언제나 비용이 세다 

자연이 멋들어진 소도시에서 백수생활도 곧 1년이 된다. 시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다 써버린지 오래고 이제는 개인 잔고가 바닥을 찰박찰박 넘나 든다. 곧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프리랜서든, 사업이든, 취업이든 간에. 무언가 쌓아가고 있다는 게 없다는 불안들은 요즘 들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다가 굳은살이 박힌 것만 같다. 아예 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찾은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걸 하겠다고 1년을 일하지 않았는데, 다 지나고 나니 좀 더 살아봐야 뭘 하고 싶은지 알겠다는 결론이 난다. 이렇게 싱거운 결론을 얻으려고 일 년이나 낭비했나 싶지만, 그간 결혼도 했고 신혼집으로 이사도 오고 대학교도 꾸준히 다니고 미싱과 미술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름 일상의 조각들은 바쁘게나 흘러갔다. 경력을 쌓을 순 없었지만 적어도 이력서에 펑크는 나지 않았고, 이제 내 옷도 스스로 만들어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퇴근하고도 부업들을 이고 지고 살던 시기와 달리, 지금은 스스로를 설명할 때 할 말이 없다. 그냥 논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새댁이고, 대학생인 여성이다. 하지만 왠지 그것들로만은 내가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잦다. 김샌 탄산처럼 밀도가 확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직업은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 물꼬를 트거나, 혹은 인간관계를 넓힐 때에도 더 필요했다. 




프리랜서나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소도시에서는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일을 할 때는 오히려 간절했던 기회들이, 쉬니까 오히려 그냥 귀찮았다. 다른 일도 딱히 없으면서 말이다. 어디 나가는 김에 은행도 가고 병원도 가고 하는 것처럼, 동력이 있어야 추진력이 빠르게 더해진다. 그간 평소 밀도의 60퍼센트 정도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게 꼭 필요한 쉼이었다고 믿어본다.




크게 돈 쓸 곳이 없기도 했고, 코로나로 이동도 제한되는 탓에 가벼운 통장잔고는 꽤나 오래 버텨주었다. 남편이 부족하다 싶으면 용돈을 주기도 했고. 오히려 주식에 투자한 돈들이 훨씬 쉽게 버티지 못했다. 뭐 그건 그런대로 두고, 이제는 조금 미래를 계획해야 할 때다. 그간은 나름 한낮의 햇살이 즐거웠는데, 요즘은 너무 심심해졌다. 날 늘 괴롭히는 익숙한 이 기분, 뭔가 새로운 무언가를 벌릴 타이밍이다.





경력이 쌓이며 눈이 높아졌는지, 암만 워크넷이고 사람인을 봐도 성에 차는 직업이 없다. 내가 사는 곳은 공단지역이라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이 펼쳐져있어 원래 여자들이 회계나 경리 계열이 아니라면 물리적으로 취업하기 불리하긴 하다. 나는 그렇게 성격이 꼼꼼한 편이 아니라서 저런 직종을 선호하지 않는다. 최근에 고용센터와의 미팅에서도 아쉽게도 프리랜서 직은 따로 관리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정확히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을 다시 경험할 때가 되었다. 성향상 여러 가지 일에 동시다발적으로 발 담고는 일을 좋아하는데, 프로젝트 단위가 찰떡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도시에서 프로젝트 단위란 거의 세금 쓰는 일이 많다. 맨날 세금 쓰는 일들 관리만 하다 보니까 쓰는 법이 아닌 돈을 버는 방법을 도통 모르겠어서, 이제는 민간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많이 버는 시장이 아주 궁금하다. 아주 큰 회사나, 큰돈을 만지는 직종들.





한 가지 일만 너무 깊게 하면 또 질려서 유지가 안되고.. 사실 작은 소도시에 살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고얀 성미이긴 하다. 그래도 어떡해, 내가 낸데. 달래면서 살아야지. 지금까지는 뒤져보지도 않았지만, 일단은 시청 홈페이지든 구직사이트든 열심히 뒤져보기로 한다. 집에서 손으로 조잘조잘 만들고, 나가서는 미팅만 하는 재택근무형태가 딱이긴 한데, 해본 결과 이런 일은 또 페이가 너무 적어서 만족스럽지가 않다.





뭐, 찾다 보면 새로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자유롭게 일하면서 감각이 필요한 기술도 하나 배웠으면 한다. 카테고리가 없는 존재이자, 카테고리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은 나는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필요하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지지대. A를 밟으면서 B를 준비하는 삶이 워낙 익숙하기도 하고. 자유는 언제나 비용이 세다. 조금 더 자유로우러면, 조금 더 노대야 한다. 





남들은 남 신경 안 쓰는 내가 참 부럽다는데, 난 내 성향 따라가느라 진심으로 남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한국사회에 잘 맞는 무난하고 반복적인걸 잘 참는 성격이었으면, 나도 남들을 신경 쓸만치의 여유가 있었을까. 난 남들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내 안에 있는 롤러코스터는 나를 올려놨다, 어느새 내려놨다 한다. 난 그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늘 안간힘을 쓴다. 





예전엔 그 롤러코스터가 미웠는데,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희고,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주근깨가 많다. 성향은 그런 거다. 그냥 날 때부터 그런 거. 그래서 난 어쩔 땐 기분 좋게, 어쩔 땐 스릴 있게 그냥 롤러코스터와 함께 하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는 평생을 함께 가야 하니까.





이제는 꼭 맞는 카테고리가 있는 존재가 되기를. 급하게가 아니더라도 내게 꼭 맞았으면 한다. 이왕이면 아주 새로운 것도 좋겠다. 새로운 사람들도 좋고, 새로운 직종도, 새로운 도전도 아주 좋다. 새로운 배움도 꼭 함께 해야 할 일이고. 원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분명히 오겠지. 






감사하게도 1년간 스스로랑 잘 놀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편했던 일상을 졸업하고, 너른 미래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때다. 벌려놓은 일들도 진행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기회도 두 눈 크게 찾아보고, 새로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할 때. 길고 긴 미래를 위해서 조금씩 나아가야 할 때. 그리고 그 과정들을 이렇게 글로 소상히 기록해야 할 때이다. 다시 아주 열심히 달리기를! 그리고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줘요 2: 나 홀로 전자 소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