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Jan 01. 2024

32살의 첫 날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4년의 새해가 밝았다. 원가족들과 함께 여수의 백야도에 가서 일출을 봤다. 사실 이곳은 일출보다는 일몰이 훨씬 유명한 곳이다. 한참을 들어가서야, 이제야 해가 보일만한 곳이 보였다. 일출이 떠오르기 30분 전이였다. 차 몇 대가 줄을 서 있었고, 아직 나와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구름이 심해, 파스텔톤으로 하늘이 얼룩져갔다. 우리도 조금 수다를 떨다 차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날이 춥지 않았다.


옆에서는 어떤 아이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주 고수라고 생각했다. 영롱한 해가 떠오르고, 사진을 찍고, 남동생을 찍어주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아쉬워서 낭도까지 갔다가 만두와와 찐빵을 먹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구매해서 섬섬길 팔각정에서 펼쳐 먹었다. 집에 오는길에 떡국떡과 사골, 바나나와 방울토마토를 사왔다. 본가에서 사골 떡국을 반그릇 먹고 왔다. 나는 여전히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꺽꺽- 트림을 토하며 광양으로 먼저 올라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채우는 순천에 들려 이모에게 김장김치를 전달하고 우리집에 놀러온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제 순천으로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집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전날 새벽에 잠을 설친 탓에 졸려서 일단 누웠다. 30분만 자야지- 했는데 피곤했는지 50분이 되었다. 일도 쉬고, 잘 먹고 다니고 날도 추운 겨울이라 갈수록 잠이 너무 늘어서 큰일이다. 잠이 는건 큰일이 아니지만 너무 느는건 큰 일이다. 하루종일 몽롱하다. 동생이 순천에서 출발한다는 전화에 깨서 비몽사몽 치우고 (사실 거의 못 치우고) 가족을 맞이했다. 


12월 1일에 이사를 오고, 딱 한달만에 들리는 부모님이였다. 아빠는 경치하나는 끝내준다고 했다. 한시간정도 앉아 티비를 보며 수다를 떨다가, 신라면에 대파와 버섯을 잔뜩 넣어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 먹더니 모두 떠났다. 시끌벅쩍한 연말이였고, 더 시끌벅쩍한 연초였다. 원가족들과 함께 있을때는 엄마 아빠가 시키는 것도 많고, 다 부지런해서 뭔가 해야하는 것도 많고 정신이 없고 피로하지만 생명력이 있다. 가족들이 빠져나간 집은 썰물이 빠져나간 뻘처럼 고요했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하기가 싫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감정적 허기가 진다. 시끌벅적하다가 모두가 가고 확 조용해질때,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요즘은 이게 진짜 내 일상이기도 하지만. 괜히 외롭다가 더 괜히 심심해진다. 친구들 한두명에게 괜히 전화를 걸어봤다가, 심심하다고 토로해보다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이 감정에 빠져있을수록 나만 손해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엄마에게 받은 음식들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고, 괜시리 여기 저기 물티슈로 닦아도 봤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은 많은데 말을 할 수 없다는게 퍽 외롭다. 저녁 약속을 잡을까 말까 잡을까 말까 하다가 말기로 한다. 물론 잡으면 나가서 그 순간들은 재밌겠지만, 매번 이런 감정에 질 수는 없다. 나름 고군분투 하는 중이다. 인스타 스토리에 오늘도 바늘땀을 박고, 대충 만족하기로 한다. 벌써 저녁이 되서 야경이 깔린다. 흔들의자에 앉아 이불을 덮고 흔들- 흔들 하며 야경을 바라보니 괜시리 슬퍼진다. 연초인데 왜 더 침울해지는걸까. 


올해는 어떤 한 해가 되면 좋겠나- 생각해보면 조그만 것에도 진심으로 충만히 감사하는 해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해면 좋겠다. 내가 서운하고 힘든 일은 오히려 좋아!! 차라히 잘됐어!! 라고 생각하는 해면 좋겠다. 그래서 그래, 이런 야경과 흔들의자의 안락함, 또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게 어디야- 감사한 일이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주 조그만 것에도 진짜로 감사하는게 습관이 되는 해가 되기를.


올해는 뭘 해보고 싶나- 생각해보면 먼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하고 싶다. 규모가 작던 크던을 떠나서, 무언가 내 브랜딩을 만들어본다는게 의미있을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아마 많은 공부가 될 거고. 그리고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 또 그림도 꾸준히 그리고 싶다. 운동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10분이라도 좋으니. 그중 제일 욕심나는건 글이다. 내 삶의 과정들을 기록하고 싶다. 누가 보든간 말든간에.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고 싶고, 조금 더 욕심내자면 영어를 잘하고 싶다. 


작년글을 살펴보는데 1월 1일의 글이 없어서 아쉬웠다. 연말쯤 다시 이 글을 뒤척일 수 있게 되겠지. 그때는 심심함과 외로움을 컨트롤하는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혹은 그럴 짬이 없는 것도 좋다. 감사하게도 세상에 무언가 할 일을 찾아내고, 주어지는 역할을 온전히, 열심히 수행하는 내가 되기를. 그렇게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1살의 마지막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