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을 접하는 관점

호캉쓰중인 박약독백

  한 달을 고생한 사업이 탈락했다. 사실 이런 공모사업들은 공모에 맞춰 열심히 하는 것까지가 내 일이고, 붙일지 말지는 내 손에 달려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뿐. 탈락이란 말이 기분 좋게 다가오기는 힘들지만, 언제까지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 기이도 하다. 뭐든 승패가 있기에 더 긴장하고 노력함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러한 계단에 서있고, 이 계단을 끝없이 오르다 보면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많은 사업판이 그렇겠지만, 정기적으로 평가를 당하는 직종이라면 탈락 앞에 앉아 우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사회초년생에는 기대감이 컸던 사업일수록, 간절할 상황일수록 내 탓을 했다. 내가 이랬다면 저랬을까, 저랬으면 이랬을까. 아쉽게도 내가 이래도 저래도 변하는 것은 없었을 거다. 작성한 기획서가 내 눈에 최선이었다면, 그게 분명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테니. 과거의 나를 믿어라. 그러니 대표도, 상사도 설득되어 결국 그렇게 제출한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포지션은 절대 내적으로 무너지면 안 된다. 인생은 멘털 싸움이라는 광고 문구는 내가 본 그 어떤 글귀보다 좋았다. 내 탓을 하면 그게 정말 내 탓이 되어 그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불안감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 프로젝트에서 땡인 거다. 어쨌든 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이번 실패 요인을 분석해서 다음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만 외부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모두가 불안한 상황에서 나는 실력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왠지 계속 함께 하고 싶은, 언젠가 뭔가 될 것 같은 사람은 될 것이다. 회사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

 절대 미안해하지 말고 스스로 주눅 들지 마라. 그 어떤 사람도 이러한 과정 없이 올라간 사람은 없다. 만약 윗사람들 눈에 부족한 게 보였다면, 분명 제출 전에 말해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책무 불이행이다. 아랫사람은 일을 하고, 윗사람은 피드백을 해주는 게 맞다. 그냥 마침 국가에서 더 필요했던 딱 알맞은 일들이 당선되었고 그게 우리가 맡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믿어라. 어쨌든 우리의 탈락도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이 많은 말들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취할 수 없는 태도들이다. 이런 기세들은 옆 사람들이 더 빠르게 느낀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제시하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자만할 수 없다. 실제로 누가 어떤 기준으로 더 실력자 인지도 모르니까 어둠 속에서 싸우는 꼴이다. 물론 그중에도 뛰어난 것들은 야광처럼 빛나기 마련이다.

 

 어둠 속에선 내가 만드는 이미지가 그냥 내가 되어버린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면 잘하는 것이고, 못한다고 생각하면 못하는 게 돼버린다.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물론 다르지만, 그것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봐야 다른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히고 그 범위를 오픈해라. 그 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넓으면, 남들은 그냥 뭐든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쫒아다니면서 내 모든 것의 깊이를 가늠하고, 실제 내가 행하는 과정들을 관찰하는 사람은 어차피 없다. 우리 엄마도 그렇겐 안 해준다.  

요새 '터틀 트레이닝'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집념 하에 몇 가지 투자 관련 책들을 읽는데 이 사람들은 감정을 제하고 이론적인 법칙에 따라 투자를 한다. 9번 실패하더라도 10번째에 성공하면 된다고 한다. 최근 읽은 채권투자와도 비슷하다.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수학 풀이처럼 공식에 맞춰서 투자하라고 한다.

  이런 책은 실용서가 아니다. 원칙만 알면 된다. 돈에 대해서 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트레이더들은 어떤 관점에서 투자하는지 파악하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활용해서 응용하면 된다. 난 공모사업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력서에 도전 몇 번 실패, 몇 번 성공이라고 적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실패는 빠르게 잊힌다. 월급을 받으면서 도전하고, 실패가 기록되지도 않다니! 게다가 성공하면 성과급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직장은 원더풀이다. 내가 100퍼센트 원하는 아이템으로 쓸 수 있다면 완벽한데, 역시 세상에 완벽은 없다.

 그러니 실패에 목 멜 필요가 없다, 이건 사실 작성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오늘 카톡을 확인하다 탈락 소식에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 뭐하지?라고 조금도 속상해하지 않고 다음 플랜을 짜던 스스로가 속상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만 달리는 게 너무 익숙해 보여서. 그러다 보면 아침이 오고, 삶은 오솔길이 아니라 운동장처럼 넓어 결국 모든 방향이 정답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둠 속에서 너무 맹렬히 달리는 내가 그냥 너무 짠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바쁘지만, 잘 쉬어주려 한다. 농사를 지으러 가면 우리 할머니는 일이 고되면 음식을 잘 먹이다. 중참도 먹이고 점심도 먹이고 간식도 먹이고. 너무 힘들 땐 쉬어야 하는데, 일이 많으니 쉴 순 없고 그냥 잘 먹인다. 농사야 뭐 가끔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삶에선 자주자주 쉬었다 가려한다.

나는 많이 하는 건 싫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소스들이 필요하다. 생각을 하는 직종이지 물리적 양을 채우는 직종이 아니니까. 요즘은 누가 제시한 생각들도 너무 많아서 그냥 편집만 하면 된다.  사유도 그렇다. 파도 타듯 브런치들을 읽다 생각이 딱 떠오르면 이렇게 달려와 적으면 된다.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오늘은 월차를 쓰는 날. 호캉스를 왔다. 호텔의 깔끔함과 정갈함, 한눈에 보이는 오션뷰가 좋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그런가, 나는 유난히 자연이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월에 꼭 몇 번씩은 자연을 느껴야 한다. 안 그러면 갑갑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넓은 대자연의 웅장함과 액정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비비드함이 좋다.

내 삶은 평소에 내가 너무 가득해서, 큰 자연 안에서 나는 내가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은 가만가만 나를 안고, 그래도 돼. 다 별거 아니야.라고 포용해준다. 나는 스스로 내가 하는 일들이 너무 대단하고, 지역에서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고 사회에서 너무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존재가 별 것 아니라고 말해주는 자연이 좋다.

  이건 도심에서 받는 별 것 아님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사람이 쏟아지는 도시에서는 내가 '평범한' 별게 아닌 것 같은 존재가 되는 기분이고, 웅장한 대자연 속에서는 '특별한' 별게 아닌 것 같은 존재가 되는 기분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온전히 나로 존재하지만 사이즈만 개미만 한 느낌. 그러니까 자유분방한 개미 같다.

 나는 잠이 적거나 에너지가 통통 튀는 사람은 아니지만 삶의 유휴시간이 잘 없는 사람이다. 호캉쓰때 다들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늘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프랑스 자수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아침을 좀 먹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중이다. 레이트 체크아웃으로 약 1시에는 나가야 하니 두 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간 독서를 좀 하고, 남은 프랑스 자수도 완료해야겠다. 어제는 9시쯤에 잠에 들었으니 아무리 봐도 적게 자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공모사업들이 끝났으니 당분간 수익사업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데 집중해야 할 듯싶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까'라는 문제에 답하기에는 여간 쉽지 않다, 거기에 사회적 경제가 붙어있으면 더 그렇고, 문화예술이 붙어있으면 더더 그렇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는 포지션이고, 모든 회사가 그렇듯 만들자면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 회사에서의 하루도 스스로를 위해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내일은 내일대로 바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상황에서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만일 여기서 근무를 마치게 된다면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아이템 몇 개만 고려중이지만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수많은 변화와 바람이 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론적으로는 승리할 것이다. 내 삶에서 경험한 그 어떤 시도와 포기에서조차 단 한 번도 실패는 없었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래서 난 희망찬 미래를 믿는다. 모두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웃더라도, 언젠가 대저택에 살 것이라는 것도, 내가 잘 나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내 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은 별로 중요치 않다. 살아보니 그랬다.

 탈락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조금만 더 계속하면 된다. 그 조금씩이 모여 결국 꿈과 맞닿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잘 살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경험에는 후퇴란 없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일 뿐. 그러니 오늘도 잘했다, 어제도 잘했고, 물론 그제도 잘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모두 잘할 것이다. 이 모든 걸음들은 결국 나를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게 하고, 맹렬히 달리게 할 것이다. 새벽이다, 분명 곧 해가 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