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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Jan 22. 2024

<경성 크리처> 리뷰 : 스포주의, 마에다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리더상

경성크리처, 흔하지 않고, 매력있는 이름이였다. 누구는 전세계권에 올랐다고도 하고, 누구는 재미없다고도 했다.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편이지만 그래도 유명한 건 보기도 하고, 마침 긴 여행 전 남편이 함께 보자고 해서 틀게 되었다. 난 잘 모르지만, 사람들은 드라마에 참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시각적 미와 거슬리지 않는 연기, 소재의 독특성과 캐릭터의 매력도가 가장 중요하다.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인생 드라마는 미스터션샤인이였다. 모든 캐릭터가 매력있었다.


다들 스토리가 약하고 러브라인이어쩌네 하지만 어쨌든 일제감정기 시대물이 전세계에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통쾌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베트남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걸 안다. 어쨌든 역사의 과오에 관한 판이 커져야, 당한 것도 한 것도 사회적 측면에서 활발히 논의될 것이다. 또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담론들이 제기될 것이다. 모든 문제는 회피가 최악이다. 인정할거 인정하고, 사과할꺼 하고, 낼꺼 내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일이 없도록 논의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작 자체가 의미있다고 봤다. 요즘은 문화의 힘이 아주 세니까.


다들 재미없다는데, 난 재밌었다. 뭐든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직접 해봐야 안다.그래서 후루룩 몰아 봤다. 경성느낌의 시각적 효과도 좋았고, 뭐 엄청 말도 안될정도 아니면 본래 스토리에 깐깐하지 않다. 나는 오히려 캐릭터를 더보는 편인데, 마에다 캐릭터가 너무 인상깊었다. 밖에서 보기엔 그저 앉아만 있는 일본인 아내지만, 모든걸 관찰하고 지시하는 힘을 가진 인물. 정말 세상에 있을만한 캐릭터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수현이 아름답고 연기를 참 잘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와 자태에 어울리지 않는 잔혹함이라니.


사실은 내가 힘과 권력을 가진다면 이렇게 가지고 싶었다. 아무도 날 모르는데 난 뒤에서 지시하는 힘이 있고, 아무도 그걸 모르는데 난 부자야.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도 귀찮고 시끄러운 상황도 싫고 명예도 크게 관심 없다. 겉으로는 고상히 소소한 취미를 가꾸며 여유롭게 살고, 뭐 그정도는 전시해도 되겠지. 사실 뒤에서는 바쁘게, 아주 큰 판을 조정하고 싶다. 물론 이렇게 나쁜 형태의 일 말고,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장기 대형 프로젝트를 너무 열심히 노력해서 진두지휘하고 싶다. 그러려면 당연히 그정도 실력과 힘, 인맥도 필수일거고. 마에다는 내가 가지고 싶은 리더상을 그대로 가진 여자였다. 그 힘이 좋지 않은데 쓰인건 정말 유감이지만.


미디어를 보면서 내가 원하는 상이 투명히 보인건 처음이였다. 홀로 고고히 백로처럼 우아하게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보이는 관계에 묶이지 않는 사람. 이시카와의 결혼처럼 필요할때는 굽힐 줄도 알고, 움츠려 기다리며,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체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주 분명하고, 아닌척하지만 진하게 태가 남는 여자. 아끼는 사람을 지키려 본인 나름으로는 애를 쓰고 있는 사람. 말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말을 꺼내는 사람. 권력자들은 이시카와를 보러 오는게 아니라 마에다를 보러 온다. 하지만 밖에서 대중들은 이시카와를 보러 오는지 알겠지. 나는 이렇게 숨어있는 진짜 실력자가 되고 싶다. 물론 형태만 이렇다는 것이다. 형태만..그녀가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한국인으로써 참을 수 없다. 사람 생명이 생명이여야지 무슨..


다양한 캐릭터와 괴물의 존재보다 마에다가 마음에 진하게 남았다. 최성심과의 관계도 궁금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스토리가 궁금해서 2부도 연속해서 볼 계획이다. 그리고 장태성의 캐릭터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맨바닥에서 스스로 자수성가를 한 조선인. 본인은 아무리 더럽게 살았다지만, 조선인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 것 만으로도 이미 억눌려있는 조선인들의 자긍심이지 않을까. 금옥당에서 조선인들과 가장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부터 혁신인 것이다. 애국의 길을 걷지만 비교적 큰 고초 없는 감방에서도 반나절만에 이름을 적어낸 권준택과는 아예 다른 캐릭터다. 사실 권준택도 본인이 경험한 세계에서는 최선을 다 한게 맞다. 애국하는 마음, 독립투사들은 사실 천편일률적인게 아니다. 애국심과 독립투사는 획일적인게 아니다. 다 각자의 삶에서 할 수 있는 방도로 애국하는 것이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애국한 사람들덕에 나는 지금 편안한 까페에서 좋은 음악, 달콤한 음료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 일제감정기 시대의 컨텐츠를 보면 항상 당연한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사회 안전망을 만드려 노력한 선조들 덕에 내가 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 내가 남을 위해 배려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고, 사회에 어느정도 이바지하는 것까지가 1인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0 이상은 되어야 1인분이 아닌가. 헬 조선이라는 말은 쉽게 할 말이 아니다. 나라가 힘이 없다는것은 개인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도 되니까. 헬조선이라 마음껏 비난할 수 있다는거 자체가 살만한 나라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컨텐츠 존재 자체가 의미있다고 본다. 제작비가 얼마가 들었든, 스토리가 얼마나 개연성있냐 간에 내 생각은 반뼘 더 넓어졌으니까. 어차피 그걸 나한테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이 컨텐츠를 본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본다. 본인들의 잘못을 늘 회피해오고 역사에서도 삭제를 반복했던 그들이 직면한다. 잊혀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우리는 당신들 덕에 부강한 나라에서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산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처절하게 아팠다. 참.. 먹먹하고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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