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아이를 기르면서 하고 싶은게 하나 생겼다. 바로 위탁모다. 원래 지금까지도 자주 일을 하다가 안식하고는 했지만, 40대와 50대에도 일이년씩 안식년을 가지고 싶었다. 원래 매사에 잘 질리기도 하고, 별걸 다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라. 원래는 안식년에 세계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기간을 조금 늘려 하고 싶은게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입양을 가기 전 개인이 집에서 6개월~1년간 케어해주는 위탁모다.
중고등학교때도 책을 좋아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다. 떠올려보면 공부보다 책을 훨씬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책중, 트레버라는 책을 아주 감명있게 읽었다. 한 사람이 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큰 도움을 주면, 그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이게 반복되다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내용이다. 그때 내 생애 딱 3명만 진짜 크게 도와보자, 라고 결심했는데 아직 그럴 기회가 내게 오지는 않았다.
내일이면 벌써 아기가 100일이 된다. 아기가 눈을 맞추고 웃는 순간, 너무 예쁨을 넘어서 경이롭다. 주변의 수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금도 이렇게 예쁜데, 내가 할머니 또래가 되면 아기들이 더 얼마나 예뻐보일까 싶다. 물론 사람일은 모른다지만, 우리는 둘째계획이 없다. 나는 해외도 넘나들고,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아이 하나는 어떻게 같이 다닐 수 있지만 둘은 거의 힘들다. 택이가 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평생 돈을 신경쓸 필요도 없게 경제적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면 셋까지도 의향이 있지만, 뭐 그러지 않고서야.
원래는 아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결심이 섰다. 인간의 팔은 두 개니까, 한 팔로는 내 아이를 안고, 다른 팔로는 다른 아이들을 안아주자고. 살면서 보호종료아동들과 함께 사는 그룹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다만 나는 1명의 보호종료 아동과 살고 싶으니 개인홈인가. 평범한 가정의 온기를 느껴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었다. 특히 다정하고 긍정적인 남편을 만나 나도 케어받으니 이 감사함을 알아서 더 나누고 싶어졌다. 택이의 동의도 중요한 부분인데, 안그래도 개인주의인 택이는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정 안되면 나중에 내 작업실 옆에 게스트룸을 만들어서 해보지 뭐. 어짜피 매일 출근할 곳인데.
그런데 아가를 키워보면서 위탁모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새벽에도 밥을 먹는 갓난아기를 키우는건 체력적으로 매우 고된 일이다. 다만 3개월쯤이 지나면 통잠을 자고, 그러면 기적이 생긴다.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마냥 신기하고 예쁜데, 말을 하고 표현을 하면 얼마나 그럴까. 또 지금이 아닌 40대의 내가, 50대의 내가 아가를 키우면 얼마나 예쁠까. 이건 내 아가고 남의 아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가는 살대고 있는 시간이 길수록, 존재 자체로 경이롭다. 다들 내가 이 말을 하면 도혜가 워낙 순해서 그런다고들 한다. 맞다, 도혜는 안고 회의를 가기도 할 정도로 순하기도 하다. 다만 난 내가 그렇게 키운 값도 분명 있다고 본다.
십년, 이십년 뒤의 나는 훨씬 성숙하고 많은 걸 배운 사람이 될 테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풍족하다면 안정적인 환경에서 집중해서 아가를 돌보고 싶다. 보통 생후 3년 안에 자존감부터 성격까지 다 정해진다고들 한다. 요즘같은 세상에 고리타분하지만, 그래서 난 어린이집도 3년 뒤에 보낼 생각이다. 당장 조금 궁핍할순 있어도, 3년으로 평생의 큰 값들이 정해진다니, 얼마나 수지타산 남는 장사인가.
난 하고 싶은게 생기면 오래 걸리더라도 기필코 해내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개인홈도 하고, 또 위탁모도 하고 있을거다. 지금도 50일의 도혜가, 10일의 도혜가 이렇게 그리운데 아가가 다 크면 지금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 남는 여유분의 사랑을 나누고 싶다. 사람 밀착 케어는, 아니 특히 육아는 기계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분야다. 내가 쏟는 6개월~ 1년의 기간이 누군가에게는 무의식 중이더라도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될지 모른다. 물론 나는 지금 도혜에게 하는 것처럼 전시나 공연, 책을 많이 보러 다니고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할거다.
지금은 내가 전시경력도 쌓을 때고, 욕심이 많아 이거저거 또 할 일들이 있어서 도혜가 자고 나도 바쁘다. 하지만 안식년이 되면 아가가 8시쯤에 자니까 저녁시간에 아가 옷도 만들어주고, 장난감들도 만들어줄꺼다. 아가 한복도 여러벌 만들어 같이 보낼꺼다. 그때쯤이면 내 미싱실력도 훨씬 좋아져있겠지.
말이 10년후라지만 사실 10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빠르다. 물론 그때 도혜에게도 택이에게도 동의를 구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택이는 역시나 내게 질 거다. 도혜도 집에 잠시 놀러온 어린 천사를 반가워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동네에서 뜻이 같은 친구가 있어 어느정도 같이 공동육아도 하면 좋겠다. 급할때는 서로 맡기기도 하고. 어제도 손목이 아파 잠에서 깼으면서, 너무 귀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생명을 다시 품에 안으려면, 일단은 내가 먼저 도혜를 잘 키우고, 인생을 똑바로 살아야겠지.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 내 그릇이 넘쳐야 사랑도 나눌 수 있는 거니까. 그때까지 꾸준히 열심히 운동하고, 교육 이론서도 열심히 읽고, 도혜와 시행착오도 열심히 겪어야겠다. 물론 위탁모라는 일이 애초에 없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모두 사랑과 축복속에서만 태어나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도 손을 보태고 싶다.
살면서 3명에게 깊은 도움을 주면 정말 트레져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난 1퍼센트라도 가능성 있는건 다 해봐야 안다고 본다. 어쨌든 결론은 되냐, 마냐 두 개만 있으니까. 3명이 아니라 30명이면, 300명이면, 3000명이면 더 좋겠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 고민해보련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