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Apr 18. 2020

기르던 구피가 떼로 죽었다.

속상하고 미안한 날의 박약독백


키우던 구피가 죽었다. 물고기가 죽으면 이유를 모른다. 간혹 아프다 죽는 물고기도 있다는데, 우리 물고기들은 떼로 죽어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물 통통 튀기며 잘 놀던 애들인데.. 맘이 쓰리다. 먼저는 성인반 물고기들이 전부 죽어있었고, 성인반으로 자리를 옮긴 새끼 구피들도 전부 죽어있었다. 정말 작은 구피들은 시체도 없었다. 총 열댓 마리.




이전엔 투명한 큰 어항에서 키우다가, 청소도 힘들고 옹기가 숨구멍이 있어 좋다 해서 옹기로 옮겼다. 옹기가 까매서 까만 구피들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항 내의 식물이 잘 자라길래 더 좋은가 보다 했다. 그 식물이 너무 커서 질식했다는 게 가장 타당한 추론이다. 아니면 우리 아파트의 물이 안 좋아졌다던가.. 사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년간 밥 주는 재미가 있었는데, 못내 미안하다. 엊그제 지인의 집에서 본 깔끔하게 정돈된 어항이 떠오른다. 간혹 한두 마리 죽어있긴 했지만 이렇게 떼로 죽은 적은 없었는데. 겨울도 아니고, 햇볕을 바로 받는 자리였는데 왜 그랬을까. 심지어 새끼 구피들은 물을 갈아준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앞으로 생물체는 안 키워야겠다는 결론이 난다. 넓은 강을 헤엄치며 살아야 할 애들이었는데, 내가 너무 좁은 곳에 가둬버린 걸까.




옹기에는 지금 이름 모를 식물만 덩그렇게 크고 있다. 새끼 때부터 키운 애들이라 더욱 미안하다. 성인이 된 지 별로 안됐을 텐데, 요즘 관리가 소홀하긴 했다. 구피가 죽어있는 물에는 알 수 없는 기름기가 떠 있었다. 키우는 방법은 이 년간 동일했는데, 요즘 시골을 잘 못가 샘물을 못 구해주고 수돗물을 받아 내뒀다가 갈아주곤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살면서도 그런 일들이 있다. 몇 년간 무탈해서 인식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고장이 나버리는 경우. 작은 시그널들을 못내 무시했던 걸까, 인식하지 못했던 걸까. 오래된 친구가 쌓아왔던 불만을 얘기하거나, 건강하다 자만했는데 심각한 병이 있었다거나, 회사에서 갑자기 진급 누락이나 정리해고를 당한다거나... 이런 일들은 대게 당황스럽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불현듯, 이전에 다닌 회사에서 약속받았던 상여금을 못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시하던 기준을 충족했기에 당연히 금액의 쓰임을 계획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강남과 지역의 직원들은 계약서가 달랐고, 나보다 경력이 낮은 직원들도 받았었다. 퇴사의 시발점은 달랐으나 그 사건도 꽤나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이야 뭐 차라히 그 일로 인해 몇 달이라도 일찍 나왔으면 됐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꽤나 분했었다.




 이 이야기는 추후 관련 주제의 글에 자세히 쓸 요량이다. 물리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아마 이 스토리는 서울/지역의 카테고리와 사회초년생/회사 카테고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비싼 글감을 얻었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 맞았다.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하면 글감이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삐끗하는 것들은 꽤나 속상하다. 무탈한 부분들도 정기적으로 돌아봐야 할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에서 헤어 나오는 일들은,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일단 급하게 터진 일을 진땀을 빼며 수습하고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로 퉁쳐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을 생기면 대안을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짜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게 퇴사였고, 돌아보니 잘 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나에게 쌓인 것들을 타인에게 푸는 바람에 절교한 적도 있다.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그 친구는 앞으로도 나에게 쌓인 것들을 밖에서 풀 것이다. 나에게 풀기는 언제나 두려울 테니. 그리고 나는 그 친구가 불만이 쌓여도 분명 모를 것이다. 결국 같은 사이클이 돌 것이다. 관계의 기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순간만 해결하고 그대로 가는 게 가장 최악이다. 살면서 같은 류의 문제를 반복해서 마주치기 싫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엔 문제가 넘쳐난다. 그래서 난 애증의 관계가 없다. 애는 애, 증은 증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증의 관계는 빼고, 애의 관계는 더하면 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범위에서 증은 충분히 많을 테니.




한 번의 선택은 습관이 된다. 단 한 번만의 선택은 없다. 선택은 자꾸 연결고리를 만들어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한 번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될 테니. 내 삶이 자꾸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 때에는 긴장해야 한다.




갑자기 일어난 구피의 떼죽음. 당분간 생명체를 기르지 않으려 한다. 그게 내가 선택한 대안이다. 그동안 떠난 구피들을 추모하겠다.




그동안 나에게 와줘서 잘 커줘서 고마웠다. 너희들의 움직임을 보며 안정을 느꼈다. 불안할 때도 너희들을 보면 편안해졌다. 관리를 열심히 안 하고 공부하지 않아서  용궁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늘에선 넓디넓은 강을 헤엄치기를. 다음에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자. 2020년 4월 18일에.    


 


박약의 다른 글도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gazine/bakyak2















 




















 







 



매거진의 이전글 선한 영향력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