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Apr 26. 2020

빠꾸 할 수 없으니 전진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 붙인 박약 독백

 날이 서늘해졌다. 이제는 암막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어두어도 크게 온도의 변화가 없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한가했던 날들을 지나, 이제 슬슬 바빠지려는 태동이 보인다. 바빠지기 전에 주변을 좀 정리해둬야지. 한창 미뤄왔던 여행 포토북 만들기와 언제 적부터 그려준다 했던 아크릴 화를 완성하느라 바쁘다.


 한 개의 프로젝트를 원이라 가정할 때 크고 작은 서클들은 맞물려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 서클들이 돌고 돌아 반복되지만, 하루하루는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느라 종종거린다. 미뤄둔 포토북 만들기와 아크릴화도 사이즈는 다르지만 수많은 원들 중에 하나다. 일상은 이렇게 반복되지만 꽤나 기분 좋은 흐름이다. 편안하고 즐거우며 특히나 목가적인 요즘이다.


 그런 요즘, 몇 가지 외부적인 갈등에 노출되어 있다. 갈등 중에 갈등은 역시 세대갈등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공감하기가 왜 이렇게도 힘든지. 내가 하는 것들을 허술하다 바라보는 상사의 태도에 화가 잔뜩 나면서도, 나도 다른 사람의 결과물이 흡족하지가 않다. 나도 이렇게 보일까. 시야와 견문은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참 흔한 이 두 글자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나는 누군가에게 소통하기 좋은 사람일까? 자신이 없다. 관계도, 소통도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 교감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다. 하면 할수록 힘들어진다.


 학생 때 공부만 할 것이 아니었다. 노는 법,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 건강해지는 법, 소비하는 법 등을 배웠어야 했다. 성인들은 이제 놀래야 놀지를 못한다. 관계는 갈수록 힘들고, 관계의 율동에 질려 회피하는 사람도 많다. 건강에 자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만해도 노는 시간들에 자꾸 일을 한다. 이제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잘 노는 법도 잘 쓰는 법도 앞으로 배워야 한다.


 삶이란 게 자신만 믿고 암흑 속을 뚜벅뚜벅 걷는 것 같다. 어둠이 걷히면 무엇 앞에 당도할지 모르지만, 뭐든 가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가끔은 의심을 사기도 하고, 굳건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나는 기척도 보이지 않는 해를 자꾸만 기다린다. 결국 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랬을까.


 누군가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너무 커서 아직 차지가 않는다. 충분한지, 그렇지 않을지는 내가 결정한다. 마음이 부족하다는 걸 어떡해. 내가 어쩔 수 없는 범위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범위를 기준으로 삼다니, 내가 봐도 아이러니하다.


2년 전 배워뒀던 영상편집을 곧 강의하게 된다. 삶에 뿌려둔 모든 씨앗들은 분명 언젠가는 발아한다. 어떤 새순은 잭과 콩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새순은 남몰래 발아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새순의 굵기가 아니라 씨앗을 뿌리는 습관이다. 그 습관은 익히기가 어렵다.


저녁을 가볍게 먹어 배가 고픈데 마침 눈에 오징어집이 보인다. 당장 뜯어서 먹고 싶지만 참는다. 한 번 참는다고 큰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인바디의 역사를 보니 한 번 참는 것도 꽤나 중요하다 싶다. 다이어트가 제일 힘들다. 나에게만 힘들지는 않을 텐데, 역시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어렵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결과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결과치를 볼 때마다 꽤나 속이 아프다. 역시 방법은 될 때까지 행동하는 일상의 성실뿐인 걸까. 끝없는 전략 수정이 방법인 걸까. 포기할 용기도 없고 전진할 용기도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건 전진이라 천천히 전진을 한다.


삶의 허들을 넘고 넘고 넘다 보면 갈수록 허들을 넘는 게 쉬워지겠지. 오늘도 빠꾸 할 수 없으니 전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들끼리만의 캠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