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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Jun 03. 2020

여자들끼리만의 캠핑

조용한 해변가에서 캠핑을 즐기는 박약독백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약속한 캠핑을 다녀왔다. 평소 캠핑을 즐기기는 하지만 여자들끼리만의 캠핑은 처음이었다. 텐트를 치는 일부터 조명을 다는 일까지, 원터치 텐트라 그런가 막상 하니 별 것도 아니었다. 짐은 무거웠지만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었고, 마음은 산뜻했다. 사람은 넷인데 6인용 텐트가 둘, 돗자리에 의자가 6개, 테이블이 2개였다.


섬 속의 해변에 텐트를 쳤다. 사람이 사는 곳은 걸어서도 갈 수 없는 거리였다. 보이는 것은 바다요 들리는 것은 파도소리였다. 우거진 녹음 아래 앉아 간만의 햇볕을 쬐었다. 산들거리는 바람과 새소리는 산뜻했다. 아이스박스에서 챙겨 온 음료를 꺼내 아무 데나 걸터앉아 마셨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그 바빴을 아침에도 수박과 체리와 참외를 깎아왔다. 역시 부지런함은 부지런함을 부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들. 넷 다 연애 중이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만나기도 해서 이야기는 끝도 없이 꼬리를 물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들의 애인들도 다음번 언젠가의 캠핑에는 함께 하기로 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친구들이 이젠 회사 가기 싫다고 징징대고 있었다.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니까.


모든 대화의 흐름은 인간관계로 흘러 들어갔다. 편히 쉬는 날 흐르듯 나오는 이야기들은 관계에 밀집해 있었다. 각자의 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사람이 제일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역시 관계인가 보다. 그 달달하고 가벼운 이야기에 빠져들자 7900원에 구입했다는 싸구려 와인이 외국에서 비싸게 마신 뱅쇼보다 달았다.


한 친구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원체 두상이 작은 친구라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햇볕 아래 시원한 목덜미를 보고 있자니 나도 시원하게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쏟아질 듯 잡히는 머리숱에 금방 포기했다. 속옥이 불편하다던 그 친구는 속이 불편하다며 연신 가슴께를 쳤다.


몇 개월 전 만났을 때보다 다들 살이 오동통 올랐다. 삶이 편한 적은 없었는데 그게 어쩌다 다 그렇게 됐다. 그래도 친구들은 다 빠졌다가 찐 거였는데 나는 몸무게가 안정적으로 높았다. 다음에는 꼭 삼 킬로씩 빼고 만나자며 손에 손을 걸었다. 그렇게 열 번 만나면 삼십키로겠지. 그래서 우린 꼭 열 번 만나야 해.


금방 하루가 흘렀다. 솔방울을 가득 넣은 화로에는 불이 올랐고 삼겹살과 목살은 멋들어지게 구워졌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금방 헤어질 시간이었다. 다음날을 생각하며 오후 8시엔 헤어지다니- 모든 관계가 갈수록 건전해지고 있다. 섬의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들었고, 랜턴을 비추며 짐을 싸고 쓰레기를 주웠다.


치우는 건 꽤 힘들었다. 어리던 우리가 언제 커서 돈을 벌고 각자 차를 몰고 휴일을 이렇게 즐기고 있을까. 괜히 내가 더 뿌듯해졌다. 천천히 가도 좋으니 오래 진해지는 관계면 좋겠다. 삶을 수록 구수 해지는 곰탕처럼, 할머니가 되어도 만나 다시금 함께 캠핑을 떠나고 싶다. 삶의 많은 가닥가닥들을 지켜봐 주는 관계가 되기를. 나는 오늘도 모두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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