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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07. 2020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다시 대학생이 된 박약 독백

전공을 정하기에 19살은 너무 이른 나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모르는 이름의 대학이라도, 내가 가고 싶었던 전공은 꼭 지켰어야 했다. 학교의 레벨과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등록금 하고 싶은 것만 고려해서 선택하면 됐는데, 그 두 가지만 빼고 선택해버렸다. 19살의 소녀에게 남들의 눈과 어른들이 제시해준 삶의 방향은 그렇게나 중요했다. 그렇다고 엄청난 선택도 아니었다. 정말 다른 삶이 펼쳐질 수도 있었는데, 그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땐 다들 그랬다. 그 선택 이후로, 나는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할 때마다 '전공은 아닌데...'라는 말을 붙이며 앞뒤로 변명을 붙여야 했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은 묘하게 뒤섞여 한 측도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방향으로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막상 하고 나니 성향과 잘 맞았고, 나름 즐겁게 하고 있다 생각한다.


여전히 내재되어있는 창작욕은 나로 금 글을 쓰게 만들고,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퇴근하고 고이 쉴 수 있는 시간에, 뭔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건 꽤나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다. 글을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매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매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나가지는 글과 그림, 그리고 영상은 내게 부끄러움을 준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다 끌어안고 해 봐야 직성이 풀리고,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나게 잘하지는 못한다. 특별히 잘하려면 어느 정도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에 또 다른 것들을 해보고 있으니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납득이 된다. 고민해봤는데, 이런 어중간함은 아마 삶의 우선순위가 단단히 서있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젊어서 그런가, 삶을 재정비하고 순위를 매길 자신이 없다.


아마 관련 직업이나 매달 마감을 따로 만들지 않는 한, 스스로 우선순위를 만들고 꾸준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 노력하며 사는 일은 꽤나 많은 경험과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전공이 아닌 분야의 직종으로 일하는 건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막상 내 전공 공부 내용은 까먹은 지 오래면서도, 같은 일에 있어서 '내가 잘 몰라서 그래'라는 변명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고 생각한 순간 추진력 좋은 나는 편입생 등록금을 내고 있었다. 사이버대학이라 캔버스의 낭만은 없지만, 다시 대학생이 된 듯 설렘은 있다. 


일주일간 사이버강의를 들었다. 6개의 과목은 18학점을 알차게 채웠다. 교안을 줄줄 읽는 교수님도 계시고, 수업을 열성적으로 잘하는 교수님도 계신다. 평범한 직장인, 아니 나처럼 창작욕이 불타는 직장인이 일주일에 약 12시간을 넘나드는 인강을 들어야 한다. 현재 듣고 있는 농어촌 퍼실리 에이터 관련 수업까지 하면 14시간. 평소라면 굉장히 부담되는 시간이겠지만 요즘은 코로나로 퇴근 후 바로 집콕 모드. 어차피 딱히 할 건 없다.


코로나로 인해 무기력했던 삶이 조금은 나아가는 기분이다. 평소 관심 있던 과목들로 수강신청을 하고 나니, 왠지 반갑고 재밌다. 아직 대학생인 동생과도 말이 잘 통하고, 시간을 쪼개 쓰는 재미도 있다. 대학생 때와는 달리 관심 있는 과목만 선택했고, 힘들면 휴학도 해가며 천천히 들어보려 한다. 정말 공부를 해야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나름 공부를 좋아했던 것 같다.


시에서 처음 생긴 청년센터에 청년강사로 8회의 강의를 하게 되었다. 이론적인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난감했는데, 문화경영과라는 이름에 알맞게 재밌는 미술시장과 예술경영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업에 많이 나온다. 관련된 몇 가지를 차용해서 수업에 말해줘야지. 매달 관심 있는 분야의 수업을 듣는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원도 아니고, 2년제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4년제를 나와 다시 학사편입을 하다니..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며 동생이 만학도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아직 어린 나이에 실제 만학도도 아니지만, 다음에 언젠가 대학원을 다닐 때에는 처음에 못 다녀 못내 아쉬움이 남았던 전공을 선택해보려 한다. 이러한 준비는 또 새로운 기회를 낳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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