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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ug 05. 2021

한 땀 한 땀, 미싱 초보자의 세계

온전히 손 끝으로 만드는 것들은 모두 경이롭다

처음에는 한복이 만들고 싶었다. 예전에는 전통적인 것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갔다. 다소곳한 민화가 예뻐 보이고, 국악이 매력적이고, 한복이 독특하면서도 예뻐 보였다. 조금 더 지나자 퓨전한복이 유행했고, 나도 트렌디하면서 우리 것인 어떤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었다. 언젠가 미싱을 꼭 배워야지, 라는 말을 한동안 달고 다녔다. 어쩌다 미싱 클래스를 발견해서 뛸 듯이 기뻤다. 알고 보니 한복은 손바느질도 많이 가고 정말 어려운 종목이었다.


한 3개월이 지나자 이제야 미싱이 손에 익었다. 파우치부터 시작해 앞치마까지 연결되는 홈패션은 이제야 끝이 나고 있다. 기계로 하는 일인데도 개인의 성격이 드러난다. 급한 성격은 여실히 드러났다. 기계의 속도에 손이 따라가지 못하기 일쑤였다. 세상에 원단은 참 많았고, 예쁜 원단을 고르느라 시간들은 금방 지났다. 평소 옷은 청바지에 흰 티, 혹은 무지 옷을 즐겨 입는 편인데 원단은 왜 그리 화려한 것들만 손이 가던지. 아가나 강아지 같은 대상이 있었다면 꾸며주고 싶은 욕심이 꽤 났을 것인데 언제나 대상은 나였다.


옛날이었으면 시집가기 전에 미싱 정도는 익혀서 갔을 테인데, 요즘 세상에 미싱을 배우는 이십 대는 잘 없다. 그래서 함께 배우지 않으니 아쉽기도 하다. 워낙 사부작 거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총총총하는 것도 재밌고, 그때그때 무언가의 결과물이 나오니 참 좋기도 하다. 나중에 결혼하고 이사를 가면 커튼이나 베개 커버 같은 웬만한 천 소품들을 온전한 내 스타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 안목은 어떻게 성장할지, 디자인 세계는 어떻게 펼쳐질지나도 궁금하다.


야간반은 거의 생 초보들이 많았다. 지금은 조금 한가한 오후 시간대로 옮겼지만, 함께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달라서 같이 배우는데도 차이가 많았다. 애초에 원단 관련 사업을 하던 사장님은 한 번 배운 파우치를 가게에서 맨날 만들어서 여러 개 팔았다. 사업적인 체질이 있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냥 쉬는 시간에 제작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함께 듣던 내 친구는 패턴을 인터넷에서 사 왔다. 그래서 트렌디한 파우치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껏 몰랐는데 굉자히 꼼꼼하고 세밀한 성향이 있어서 만든 것들이 하나같이 정갈했다.


나는 원하는 디자인을 명확히 설계해서 가져오는 편이었다. 만들고 싶은 옷도, 제작하고 싶은 것들도 뚜렷한 편이었다. 같은 앞치마를 만들더라도 미리 원하는 앞치마 디자인과 원단을 골라오곤 했다. 아예 통으로 같은 사이즈와 디자인을 만드는 수업도 많다던데, 선생님이 개개인별 다 원하는 것을 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결과물은 매번 마음에 들었고 잘 쓰고 있다.


몰랐는데 패브릭 제품의 세계는 아주 넓었다. 정말 별걸 다 만들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잠깐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본가에 뭘 좀 가지러 들렸었을 때, 거실에 희고 예쁜 소품들이 가득해 놀랐던 적이 있다. 서랍 하나에도 주름이 져있었다. 어머님을 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아기자기한 스타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예쁜 제품들을 내가 만들고 있다니! 가끔은 신기하고, 나중의 내 집이 기대되기도 한다.


평소 드로잉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오면 내가 드로잉 한 것들을 인쇄해서 시그니처 원단도 만들고 싶다. 뭔가를 만들어서 팔아보기엔 너무 시간과 정성이 드는 작업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또 익숙해지면 쏠쏠한 용돈벌이도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옷을 만들고 싶다. 키가 커서 예쁘게 떨어지는 핏을 구매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이제 내 몸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옷들을 제작해서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지금 만드는 앞치마의 상침과 주머니 붙이기가 끝이 나면, 다음은 스커트를 들어간다. 그리고 그다음은 뷔스티에를 만든다. 하의에서 상의로 흘러가는 이 흐름을 거치고 나면, 복습 겸 집에서 천천히 친척들의 옷을 만들어줘야겠다. 맨날 이러고 노니 시간이 금방 금방 간다. 온전히 손끝에서 탄생한 것들은 모두 경이롭다. 맹렬히 배워 온전히 나만의 스타일로 입고 다니고, 집중도 높은 작업실 공간을 구축해야겠다. 무언가 배운다는 것, 그 속에서 내 주관이 확장된다는 일은 역시 너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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