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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Mar 26. 2020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

19.10.09일 새벽의 박약독백


돈이 되지 않는 문화활동을 성인이 꾸준히 이어나가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 작가가 꿈이지만 단 한 번도 꾸준히 글을 써본 적 없는 내가 얄궂게도 하는 변명이다. 그럼에도, 참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특이한 것이 넘치는 요즘 세상이다. 조금 평범할려치면, 왠지 자괴감이 든다. 시선을 조금만 들려도 외국 생활에, 화려한 옷가지에, 많은 부를 가진 자도, 궁금해하는 자도 많다. 나도 어쩌다보니, 가본 적도 없는 외국의 인종차별 수준까지 꿰고 있다. 



이런 세상에 참으로 소박하고 소소한 내가 몇 글자 보탠다는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근면한 삶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흥미를 끌 요소는 없더라도, 누군가 공감은 할 수 있을거라고 본다. 나도 아직 규정하지 못한 내 삶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 알아가리라 기대하고 있다.



조그만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다. 행정의 눈에서 정확히 지방 소도시라고 분류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섬이였다 조그만 다리가 놓인 곳에서 살고 있다. 밤 10시면 버스가 끊기고, 시내에서 잡아타는 택시기사님의 표정도 밝지 않으니 여기선 지방 소도시라고 명명해도 될까. 



점점 화려해지는 세상에서 갈수록 소박해지는 삶이다. 나인투식스가 잘 지켜지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이러한 소도시에 위치한 사기업의 본사는 강남 한복판에 있다. 지역에서는 언제나 인력이 잘 구해지지 않아 절절매고, 추가 인력으로 들어온 프리랜서는 문서작업이 익숙치않아 힘들어하고, 그냥 나는 멀티로 달리고 있다.



어제는 버스로 1시간을 달려 쇼콜라티에 강의를 듣고 왔다. 쌀쌀한 가을새벽에 추위에 놀라 깨어 왠지 글을 써볼 것을 알았는지, 생초콜릿이 그렇게 끌려서 사왔다. 집에 오는 내내 내 손에는 두 시간 반동안 고이 만든 페레로로쉐와 생초콜릿, 민트 초코송이가 들려 있었다. 내 귀여운 월급을 잘 아는 초콜렛점 언니가 만들어만 가지, 뭘 사가냐며 한 마디 했지만.



일주일전 우리 집 앞에 양파 한 봉지가 놓여있었다. 괜히 우리 것이 아닌 것 같아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아파트 전체에 동장님이 돌린 것이었다. 젊은 여자애 혼자 사는 것이 짠했던지, 처음 이사올 때도 계란 한 판을 가지고 인사오셨는데. 도심의 원룸에서는 앞집 사람 얼굴도 잘 몰랐었는데, 괜히 혼자 뭉클하고 감동했다. 부랴부랴 더치커피를 사와,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서 문에 걸어두었던 적이 있다. 마음이었다. 



이런 작은 동네에서, 다양한 기호를 가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른들께 선물을 할라치면 괜히 더 세련된 것, 괜히 더 최신의 것을 선물하곤 한다. 우리 부모님도 더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고, 더 넓은 선택권을 가지시면 좋겠다. 수제 민트 초코송이 초콜렛, 좋아하시려나. 



추석에 엄마한테 받은 허브차 선물세트가 있다. 총 8종의 허브차가 5티백씩 들어있는데, 매일 차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꽤나 고급 선물세트인지 티백에 잎들이 풍성하게 차있다. 오늘은 로즈마리를 골랐다. 생초콜릿과 꽤나 잘 어울린다. 이제 차를 끓일 일이 꽤나 자주 있을 것 같다. 



평소 커피를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대용으로 차를 자주 마시고는 하는데, 아직 차에 대한 기호가 확실치 않아 다양하게 시키는 편이다. 신 맛을 좋아해 까페에 히비스커스가 있으면 잘 시키고, 무난하게 홍차류도 잘 마시지만, 요즘은 민트류를 자주 시켰다. 카페인이 잘 안받아 차를 마시면서도 신경쓰이는데, 스타벅스에는 카페인 없는 민트차가 있어서 참 좋다. 



이 지역의 작고 작은 문화판에서, 최근 하나의 협동조합과 하나의 비영리단체가 사라졌다. 나처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년 문화판이 줄어든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행정리로 나눈 이 소도시의 시내권은 두 개가 있는데, 그 두 개가 멀리 위치하고 있다. 그중 한 시내권은 우리 동네랑 나름 가까운데, 택시비는 6700원 정도가 든다. 최근 그 시내권에서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다른 시내권은 그나마 단체가 몇 개 있는데, 나와 가까운 시내권은 하나 정도가 있다.



무튼 또래 5명을 구하기는 굉장히 힘들었고, 그럼에도 어떻게 만들게 되었다. 다들 직장인이라 무리있는 정도로는 할 맘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지금쯤 만들어 놓으면 내년 사업쯤은 시작할 수 있겠지. 이제 좀 가까운 거점을 만들 때다.



서울에 사는 것도 스펙이라는 요즘, 애초에 서울에 발도 비벼본 적 없어 잘 모르겠다. 외국관련 게시물을 조금만 들춰도 인종차별에 날선 댓글들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잘 모르는게 있다. 지역차별도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게다가 어느 도에 속해있는지, 명칭도 들어본 적 없는 지역이면 더더욱.



평균 남자키를 훨씬 웃도는 내가, 키크다는 말보다 사투리 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 믿겠는가. 물론 그냥 쓴다고 끝나는 늬앙스가 아니기에 얘기한다. 뭔가 지방사람같지 않게, 세련되게 생겼어요. 라는 말을 종종 칭찬이라고 듣는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야가 그만큼 좁다는 것을, 굳이 첫인상에 판단이 가능하다.



연고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 별거 아니지만 일종의 배거본딩이다. 가족도, 친구도, 차도, 돈도 별로 없이 외진 곳에서 혼자 주도적으로 살아남는 것. 그래서 나는 살아남기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 세련되고 현명하게, 그렇게 우아하게 살아남아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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