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Aug 28. 2021

중국 드라마<겨우, 서른>을 보고

결혼을 준비하는 29살의 시선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귀가 좀 트여야겠다는 생각에 드라마를 찾아봤다. <겨우, 서른>을 추천하는 글이 많아 넷플릭스에서 챙겨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중국 드라마였는데 대사도 너무 좋고 영상미도 좋고 인물 캐릭터도 좋다. sns에 너무 재밌다고 달았더니 친구들도 너무 재밌게 봤다며 여러 댓글이 달렸다.


29살들 얘기라 동감도 가고, 딱 요즘 시기의 나와 겹치는 게 많았다. 결혼 생각하면서 집 때문에 남자 친구와 다양한 얘기를 많이 하는 요즘이다. 그간 5년을 사귀었는데  공동의 목표로 달리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일단 본인에게 확신이 있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나도 가끔은 남자 친구를 설득하다 나에게 설득되고는 하니까. 


돈 얘기는 책임감으로 넘어가고 말의 문제는 태도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결국은 물질적인 것보다 본질적인 것에서 충돌한다. 모은 돈이 없는 것보다 책임감 없는 내 모습을 더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본질은 중요하다. 중심이 단단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발현된다. 결혼은 둘이 사는 건데, 서로를 조율하면서 이상하게도 개개인의 정신적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껴진다.


남자 친구는 자기가 뭐가 좋냐고 물어보지도 않지만, 난 그의 인성이 좋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밭이 좋은 느낌이랄까. 씨가 암만 좋아도 일단은 밭이 좋아야 한다. 그게 농사의 기본이다. 허세 없고 정직하고 잘 웃고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예의 차리는, 뭐 유치원에서 누구나 배우는 그런 것들. 당연히 단점도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묻어놓고 지원해주는 게 좋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수업 신청에 바이올린을 사주고, 수영 레슨에 수영복을 사주는 마음이다. 난 예쁜 옷과 비싼 선물보다 이런 게 기억에 남는다. 그가 자주 하는 "뭐든 너 하고 싶은 거 먼저 생각해. 있지도 않은 애 생각하지도 말고 나 생각하지도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내가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니"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내가 받는 그에게 위안은 시간일 때도 있고, 감정일 때도 있고, 돈일 때도 있다. 그 위안들은 분명 아주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다. 항상 앞으로 달리느라 정신없는 내게 그는 중간중간 목마르지 않냐며 물을 건네주는 역할을 한다. 그가 없어도 나는 잘 달려가겠지만, 그가 주는 물은 언제나 달다. 그 순간 목을 축이며 '아, 뛸 맛 난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난 항상 금방 잊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일 욕심을 보고 아이는 낳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일 욕심도, 아이욕심도 많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는 내가 너무 재밌게 살아서 다른 생명에게도 꼭 삶이란 걸 선물해주고 싶다.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늘 재밌다. '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에 내 호기심이 미치지 않을 방도는 없다. 


드라마 내 구자를 보면서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전업주부는 왠지 나와 맞지 않고, 내 능력을 사회에서 쓰지 않는 것은 늘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는 일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과 전업주부는 아무래도 능동적이기 힘들 줄 알았는데 사바사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 육아부터 남편 사업보조,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잘하면서 항상 공부하고 노력하는 구자는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마 살면서 생각들은 또 바뀌겠지. 인생에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안 해봤으니까 당연히 모르고, 나중에 이 글을 읽으면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것이다. 미래는 그래서 늘 기대가 된다. 예측불허라서 재밌다. 그래서 나는 생각의 찰나들을 남긴다. 나중에 모아놓으면 생각이 변하는 과정이 보일 거고, 역시 재밌을 것이다. 


우리의 독립된 가정이 생긴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사실 남들 다 하니까, 결혼이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내 결혼은 별거였다. 같은 24시간을 다 다르게 쓰듯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미리 많은 정신적 가치들을 공유하고 싶다. 아예 다른 사람 둘이 얼개를 짜고 구조를 맞춰 무언가를 세워나가는 것은 복잡하지만, 새로 룰을 짜고 짜임을 기획할 생각에 신나고 설레기도 한다. 이제 키는 우리에게 있다.


무슨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파란색이라 답하는 남자 친구와 수채화 물감 기준이면 울트라 마린이라고 답하는 내가 있다. 살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역시 구체적인 취향은 뭐든 유리하다. 20대 내내 내 취향 구축에 시간을 많이 들였다. 본인에 대해 얼마나 꿰고 있는지는 역시 모든 의사결정에서 경쟁력이 된다. 좋아하는 게 확실하지 않다면 좁은 선택지에서 양보하기 쉬워진다.


공통 주제가 생기니 그와 오랜만에 대화를 아주 오래 한다. 이때껏 기질이 너무 달라 공통점이 없어 긴 대화를 할 일이 잘 없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약간의 무관심이 적절히 배합됐는지, 생각보다 연애에 필요한 대화들은 다양하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간 문제없이 잘 사귀어왔다. 그와 오래 대화하고, 서로를 또 깊게 새로이 알아가는 과정은 꽤나 즐겁다. 


우리는 기질과 취향이 너무 달라서 정말 재밌다. 함께 설정해가는 완충지대가 제발 견고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협의는 이제 시작이다. 


사진출처 : 겨우, 서른 넷플릭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느낀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