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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02. 2021

웹드라마 <D.P.>를 보고 느낀 점

악습에 대하여

군필자들이 PTSD 온다는 D.P. 를 봤다. 초반부에는 너무 잔인해서 끄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재밌다는 평이 많아 호기심이 일었다. 초반부를 잠깐 참고 호열이 나올 때부터 이야기는 아주 매력적으로 흘러갔다. 모두의 연기가 정말 좋았지만, 특히 김성균의 생활연기는 진짜 존재하고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은 각자의 결으로 뻗어나갔다.


내용은 아주 잔인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사람으로서 이런 짓을 해도 되나 싶은 인물도 있었고, 너무 불쌍한 인물도 있었다. 실제 군대는 어떨까 싶어 주위에 물어봤는데 정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또 아예 없지는 않다고 했다. 강도는 차이가 있지만 웬만한 것들은 아주 흡사하다고 했다. 특히 군대 관련 직업이 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스트레스받는다고 오히려 보기 싫다고 했다.


또래들끼리 서열질을 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시절의 악습이 떠올랐다. 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했는데, '집합'이라는 게 있었다. 여자 선배들이 우리 동기들 중에 나이 많은 분들을 빼고 여자들만 모아놓고 한 교실에서 욕도 하고 성질도 내면서 기강을 잡는 일이었다. 일반 직업군에 비해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다지 기강을 잡을 연습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런 악습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자애들이 '돼지'라고 놀리면 있는 힘을 다해 얼굴을 싹싹 긁어놓곤 했다. 남자애 부모님이랑 남자애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집에 찾아오면, 부모님은 맞벌이라 집에 잘 없었다. 그 어린 꼬마가 뭘 안다고 혼자 대면해서 '애초에 안 놀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 그쪽에서 잘했다는 거예요?'라고 반문해 어른들의 기를 빼놓곤 했다.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버스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약아, 너 그거 기억나니? 내가 너한테 교장실 청소를 시켰는데, 네가 뭐랬는지 아니? 선생님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한테 시키세요? 이러는데 내가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보내고 내가 했어."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 선생님에게 얼마나 남은 에피소드였으면 한 10년 만에 우연히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할까.


이랬던 꼬마가 커서 조용해졌을 리가 만무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입학과 동시에 '싹수없는 ' 바로 모두에게 낙인찍혔고, 10학번들의 일부는 심심하면 집합을 시켰다. 재수한 사람 빼고, 나이 많은 사람 빼고, 여자 신입생들만 모여있으면 여자 선배들만 와서 욕도 하고 성질도 내고 번갈아가면서 난리도 쳤다. 마지막에는  치킨을 사주면서 형식적으로 화해하는  매뉴얼이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갔는데, 나중에는 나 때문에 집합했는데도 안 가서 동기들이 사색이 돼서 연락 오곤 했다. 사실 나 때문에 집합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지. 난 그때도 '불만 있으면 직접 와서 말을 해야지'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졸업까지 그랬던 사람은 없다. 어떤 남자애는 "우리 학번 여자애들은 세 가지 부류가 있지. A그룹, B그룹... 그리고 약이"라고 했다니 아마 공공연하게 그렇게 분류되었나 보다.


여하튼 입 야문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솔직히 집합도 한두 번이지, 더 하다 보니까 좀 가짢기도 했고 하도 미움을 받다 보니 난 절대 이런 건 안 해야지 싶었다. 일 년이 지나고 후배들이 들어왔다. 과에서 선배들에게 다 인사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는데, 내가 인사를 안 한다고 그렇게 생욕을 먹었었다. 근데 함정은 난 진짜 나름 열심히 인사했던 것 같다.


여하튼 '아 도대체 인사가 뭐라고...'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그냥 모든 후배의 인사를 잘 안 받았다. 진심으로 하지 않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집합도 안 했다. 당연히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많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친하게 된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나에게 불만이 있던 동기들에게 집합을 당했다. 동기들은 직접적으로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너 약이랑 친하지? 가서 또 일러봐" 이런 식으로 혼을 냈다.


웃긴 건 이 후배들이 내가 사단을 낼까 봐 이 사연을 2년 후에나 털어놨던 것이다. 가장 악독하게 당했던 내가 집합을 참았으니 당연히 착하디 착한 우리 동기들 선에서 집합이 끝난 줄 알았다. 2년 후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로 지금 당장 그 주동자를 찾아가겠다며 술집을 뛰쳐나갔고, 가장 친한 남자 동기가 온몸으로 막았다. 웃긴 건 그 남자 동기도 나한테 화난 남자 선배한테 나 대신 털린 경험이 있다. 그 선배는 나한테 불만 있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웃으며 답했지만.  


화를 가라앉히고 그 주동자에게 왜 그랬냐며 나름 착하게 카톡을 보냈다. 그 주동자는 벌벌 떨었는지 다른 동기 남자에게 에 약인가 나를 위해한다며 연락을 해서 나를 두배로 화나게 만들었다. 그 남자 동기는 분노에 휩싸인 내 전화를 받고 한참을 고생했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와서 말을 해야지 왜 애먼 동생들에게 풀까. 4년 내내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젠 분노를 넘어서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지금은 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기질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 사람들을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는 불만을 당사자에게 가서 얘기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누군가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듯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정을 쏟아내고 뒤끝 없이 돌아서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쏟아낸 감정들에 갇혀 한참을 속상해하고 신경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폭주기관차가 날뛸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생했을 거라는 게 짐작이 된다. 나는 나만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동기들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 때문에 우리가 다 고생했는데 본인은 오지도 않고, 맨날 하고 싶은 말 다해서 분위기 흐리고 본인은 기분 풀려서 할 일 잘하고. 기껏 후배들한테 기강 잡아놨더니 "난 억지로 하는 인사 필요 없다고 생각해. 인사 안 해도 돼~"라면서 쌩까고.


집합을 당했던 후배들은 또 집합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 학번에 과 친하게 지내던 다른 라인의 후배들은 또 아래 후배에게  집합을 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첫날 하는 수련회 분위기의, 이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00식도 사라졌다고 들었다. 나도 선하게만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개개인의 성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대부분 교직이거나 그 언저리에 있다.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일부 개인이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일부 팀이 참는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D.P. 를 보면서 변하지 않는 무거운 악습의 굴레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석봉이의 말에 동감한다. 악습이 사라지던 말던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 차이를 확실히 안다.


 나 때문에 집합당한 후배들에게 '그냥 참아, 대학은 그런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어떤 새끼야, 내가 가서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기에 내가 오늘 부끄럽지 않게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대학 4년간 조금이라도 싸울 태세를 갖췄기에 누군가는 조금 더 용기를 가졌을 것이고 분위기는 조금이라도 시류에서 벗어났을 것이라고 분명 확신한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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