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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ug 29. 2021

그냥 드럽게 살기로 했다.

집안일에 무관심한 자취생

"엄마, 화장실 지인짜 깨끗하다!" 내가 매일 본가에 들르면 하는 말이다. 본가의 화장실은 들어가면 멈칫할 정도로 깨끗하다. 본래 남들도 화장실을 이렇게 깨끗이 청소하며 사는 걸까, 내가 사는 집의 아파트의 화장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백의 화이트에는 자꾸자꾸 눈이 간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냐며 핀잔을 주곤 하지만, 나와 살기 전에는 이렇게 하얀 화장실이 당연한 줄 알았다. 물곰팡이 하나 없는, 반짝이는 건조한 화장실에 대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니.


최근에 듣는 글쓰기 수업에서 습관이나 버릇에 대한 글감을 써오는 것이 숙제였다. 수업에서는 매번 서로 써온 글들을 함께 나누는데, 한 분이 자기는 정리와 버리기가 습관이라고 하셨다. 와 집 정리라니, 최근 수박을 썰어 넣으려 락앤락 뚜껑을 찾으려 연 서랍에서는 '내가 이렇게 락앤락 통이 많았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돈으로 반찬통을 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자취하다 보니 뭘 여기서 좀 챙겨주고 저기서 좀 챙겨주고... 계속 받기만 하다 보니 어떻게 이렇게 됐다. 실제로는 반의 반의 반도 쓰지 않을 텐데.


독립을 하다 보면 본인 고유의 스타일을 잘 알 수 있다. 집 정리에 대한 나의 태도는 더럽게 사는 것도 아니고, 깨끗이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관심'이었다. 집에서 에세이도 쓰고 독서도 하고 바이올린도 하고 미술도 하고 미싱도 하고.. 취미는 어쩜 그리 열심히 하면서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냥 사니까, 1주일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정도였다. 대청소라 해도 별 건 없고 욕실 청소는 그냥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때 한 번씩 하고, 솔직히 세차도 시골 가면 한 번씩 겸사겸사하고 잘하지 않는다.


밖에서는 체계적인 편이라 다들 내가 굉장히 깔끔히 살 것이라 생각하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주 오래됐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민망한 정도로 산다. 처음 이사 왔을 때에는 예쁘게 인테리어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짐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개구리 잡으면서 커서 벌레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살려두는 편이고, 비위도 강해서 내놓은 음식이 좀 상해도 그러려니 한다. 무감하면 사람은 쉽게 둔감해진다.


미니멀리즘이 늘 부럽지만, 맥시엄도 미니엄도 아닌 그 어딘가를 산 달까. 인터넷 쇼핑은 꼭 필요한 것만 하는 편인데도 어쩜 이렇게 물건은 쉽게 느는지. 솔직히 이 집안일 실력에 혼자 18평을 사는 것은 욕심이 맞다. 집 사이즈에 맞게 짐은 쉽게 늘어나고 있고, 안에서 물건도 자주 잃어버린다. 집들이를 가면 늘 그 깨끗함과 뽀송함이 부럽다. 친구들은 늘 "야, 결혼해봐. 애 낳아봐, 다 깨끗이 살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순서가 있다. 당연히 요리와 집안일도 그렇다. 우리 엄마는 결혼하면 맨날 하는 게 요리라며 주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난 요리와 집안일의 순서를 잘 모르고 독립했다. 요즘은 워낙 유튜브에 정보가 다 있어서 깔끔한 사람들은 모두 찾아보고 적용하겠지만, 나는 10년간 대충 살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예정이다. 오히려 남자 친구가 군대에서 했다며 청소 방법도 더 잘 알고 욕실 청소도 훨씬 깨끗이 한다.


그냥 드럽게 살기로 했다. 뭐 병 걸릴 정도는 아니고, 딱히 거슬리지도 않으니까. 그 에너지를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데 쓰는 게 맞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은 잘 안 부르게 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지만 예쁘고 세련되고 넓은 카페들은 골라서도 갈 수 있다.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한다고 순백의 색이 되는 인테리어도 아니고, 새 아파트로 갈 때쯤에는 결혼도 했고, 티가 금방 나는 인테리어니 자연히  더 신경 쓰게 되겠지. 독립에 대한 로망, 예쁜 집에 대한 로망이 없는 사람은 그냥 있는 대로 살면 된다.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그 팁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건 미래의 내가 충분히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남겨두려 한다. 지금부터 깔끔히 살려면 있는 걸 싹 갈아엎어야 할 판이니까. 날이 좀 선선해지면 쓰지 않는 물건들을 기부하고, 엉망인 물건들은 버리고. 내년에 작업실이 생기면 작업 물건들은 옮기는 정도로 천천히 짐을 먼저 줄여야겠다. 현대 사회에서 1인이 가지고 있는 짐이 이렇게나 많다니, 지구에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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