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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27. 2021

궁극의정도는 자연스러움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이길래

얼추 수영을 할 줄 알게 된다면, 레슨을 받을 때마다 빼먹지 않고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수채화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색이고 구도고 간에 교과서스럽지 않으면서도 꼭 '자연스럽게'하는 것이 목표가 되곤 한다.  작가님들은 퇴고의 과정을 거칠 때, 최대한 많이 입으로 글을 읽어본다고 한다. 결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이길래 모든 배움의 마지막에 서있는 걸까?


친척들끼리 모여 미스 트롯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발성을 좋아하는 어른들은 없다. 다들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가수와 어울리는 무대 콘셉트들을 가장 선호한다. 미스 트롯이기 때문에 전통 트로트를 잘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빠의 말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로트 대회에서는 트로트를 잘 부르는 사람이 상을 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걷기와 뛰기, 주변을 살펴보기가 몇 천 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쉽게 조합하고 분류하는 로봇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로봇 자체가 인위적인 존재이기 때문일까. 너무 사람 같거나 말과 표정이 아주 자연스러운 로봇을 보면 왠지 소름이 끼친다. 인위적인 존재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유형을 하는데 자꾸만 강사님이 자연스럽게 하라고 한다. 왼팔이 올라가면 다음 팔을 올릴 생각을 하고, 발은 두둠칫-두둠칫- 무겁고 크게 치겠다는 생각을 하고, 발은 물 위로 띄워서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맞춰가는 폼이 자연스러울 리 없다. 이론대로 해야만 정확한 폼이 나오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지. 이 상충되는 조건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금 더 오래 했다는 수채화를 그리면서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개념이 잡힌다. 자연스럽게,라고 생각하면 왠지 힘을 빼고 자유롭게 그려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일종의 요령이 필요하다. 처음 배우시는 분들은 '그림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관찰력이 없다. 여러 번 쌓아 올려서 깊은 맛을 내는 터치가 있고, 둔탁해지는 터치가 있다. 먼저 이러한 기본적인 차이를 잘 알아야 자연스럽게 얹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아마 수영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지금은 아직 내 신체에서 이론적인 방법으로의 최고의 폼을 구현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폼이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고수들이 보기에는 아쉬운 디테일한 차이들이 있는 것이다. 먼저 이론적인 방법으로 내 신체에 알맞은 최고의 폼을 구현하고 나서, 힘을 뺄 부분들을 알아채고 조금씩 수정해나가면서 폼을 교정하는 것이다. 


사실 수채화도 똑같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양인보다 흐릿한 동양인을 닮게 그리는 것이 더욱 힘들다. 형태가 확실하고 복잡한 그림을 먼저 연습하고, 그다음에 단순한 그림들을 쫄깃한 밀도가 있게 그리는 법을 배우면 된다. 어느 정도의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감을 잡기가 힘들다. 내가 미술을 자연스럽게 그릴 줄 몰랐다면, 수영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다.


옷도 마찬가지다. 가장 기본이라는 흰 티에 청바지를 제일 예쁘게 입는 방법에는 몇 센티 차이인 핏이 예쁜 옷을 고르는 것도 물론 포함되겠지만, 일단은 몸을 예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가장 기본형태일 수록 입는 모델의 몸 핏이 중요하다. 자연스럽다는 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가 은은히 배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기본기를 다지는 일은 가장 반복적이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결국 그 기본기가 보인다는 것이다. 기본기가 가장 단순할 것 같지만 가장 복잡한 개념이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액정을 터치한다는 것, 무언가와 사람의 몸을 맞댄다는 것은 사실 기술의 발전보다는 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애플은 그 더 자연스러운 행위에 수많은 기술력을 투자했고, 아이콘 하나도 일반적인 각도보다 더 자연스러운 곡률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여 설계하고 특허를 낸다.


진짜 자연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연스러움을 쫒는다는 건 그 무엇보다 동물적인 원초적 행위가 아닐까. 인공적 기술에서 한 번 더 인위적인 기술을 가미해 만든 그 아이콘을 보고 우리는 쉽게 자연스럽다 말한다. 미술과 수영,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고, 모든 게 그렇다. 사람들은 단단한 기본기의 결을 최고로 친다. 결국 궁극의 정도는 자연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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