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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Nov 01. 2021

선택의 기준

나는 앞으로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볼 요량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갈수록 선택할 사항이 많아진다. 결혼뿐 아니라 내 인생에 대한 결정들도 그렇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N 잡러로 사는 삶은 언제나 결정의 연속이었다. 일에 관한 결정은 이제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삶에 대한 다양한 결정들에서는 아직 한참 미숙했다. 아무래도 모든 걸 꿰뚫을 기준이 필요하다.


어제는 한참을 그와 심하게 다퉜다. 그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 무조건 잘못이라는 내 언성과, 갈등에 있어서 공격적인 내 태도가 기분 나쁘다는 그의 언성이 하늘을 찔렀다. 복잡한 맘에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고, 돌아오는 말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너희 커플은 서로 기질이 너무 달라'였다. 


5년의 연애, 그리고 평생의 배우자로써의 결정은 끝났건만, 앞으로도 쟁쟁히 다툴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기질이 다르다는 것은 가끔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되기도 했고,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내 평생을 걸어도 될까. 나는 무슨 기준으로 그를 택한 걸까.


저녁에 같이 산책을 나가 화해했다. 온전히 다른 그와 나의 기준점은 앞으로도 좁혀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해가 아니라 학습에 가까운 시간일 테다. 복잡해진 마음에 하루 종일 뒤숭숭하던 기분은 풀렸지만, 뭔가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고, 그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려왔다. 관계에 대한 책도 몇 권 빌리고 나름 그를 이해하려 시도도 해보려 한다. 눈으로 책을 훑다가 좋아하는 문화예술에 관한 책이 있어 선뜻 손이 갔다. 좋아하는 것들은 이렇게 툭툭 마음을 건든다. 내가 집지 않을 수 없게야만 만든다.


아늑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따스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초코가 들어간 통밀쿠키를 먹으며 문화예술 관련 책을 펼쳤다. 관계에 대한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는데도, 결국 나는 좋아하는 책을 먼저 집게 된다. 따뜻한 기운에 책을 조금 읽다 내려놓았다. 순간 섬광처럼 스치는 문장이 있어 SNS에 사진과 함께 기록했다.


잘하고 말고 가 아니라 좋아한다.
나는 앞으로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볼 요량이다.

내 삶의 모든 결정을 판단한 원칙이 생긴 순간이다. 그와 나는 전혀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러니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기준에 들어맞는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난 그저 좋아서 선뜻 들어왔고, 잘하고말고를 떠나서 그걸로 먹고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돈도 아니고 능력도 아닌, 좋아하는 것들로만 내 삶을 점철할 생각이다. 결혼 준비도 집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웬만한 다른 기호들은 흐린 눈을 하고 좋은지, 아닌지로 쉽게 판단할 테다. 요즘은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문장이지만, 이 문구가 완벽하게 맘에 쏙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재미있는 것, 궁금한 것, 좋아 보이는 것, 좋아할 것 같은 것, 좋을 것 같은 것... 좋아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문장들은 이렇게나 많다. 난 이 파생되는 문장들을 모두 시도해보면서 살 생각이다. 실제로 별로든 아니든, 용기를 가지고. 좋았던 것은 더 해보고, 아닌 것은 거기서 멈춰버리고, 혹은 잊어버리고.


분명 살면서 다른 원칙들이 더 생기고, 세분화될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기록하며 만나보려 한다. 나는 글 쓰는 것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꾸준히 나의 다른 원칙들도 기록될 것이다. 내가 한 선택들의 과정과 결과도 모두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만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꽤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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