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신입 ~ 3년의 이야기
한 달 동안 산출물 작업만 도와주다가 이B님이 회의실 세팅하라고 하여 최S와 함께 회의실에 빔프로젝터를 키고 음료를 세팅하고 있던 중 갑자기 이B님이 들어와서 화이트보드에 회사에 대한 소개 및 설명을 해주었다.
최S는 노트를 가져왔지만 나는 회의실 세팅만 하라는 줄 알고 아무것도 안 가져온 상태에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설명을 하다가 이B님이 엄청 욕을 하였다.
"야 이 XX야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이 XX가 돌았나 진짜 미쳤어? 싹수없는 새끼가 들어왔네 이 XX 새끼가!"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변명도 못한 체 죄송하단 말만 계속하였다.
이B 일부러 노린 것 같지만 필기도구 안 가져 온건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B님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출보증", "담보보증" 이란 말이 계속 나온다.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알기론 B2B 업종의 웹에이전시라고 들어서 왔는데 무슨 사채업 하는 회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명이 다 끝나고 이B님은
"넌 아무것도 안 적었으니까 내가 얘기한 거 정리해서 내일 나한테 보고해"
라고 하셨다.
나는 끝나자마자 자리로 뛰어가서 노트에 미친 듯이 적기 시작했다.
다행히 놓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서 그다음 날 정리하여 보고하였다.
나의 첫 직장은 MP(Market Place) 사라고 불렀으며 B2B 전자상거래 회사였다.
쉽게 풀어보면 온라인 시장, 우리 회사 사이트에서 구매사, 판매사가 거래를 하여 은행으로 매매 계약서 전문(전자 문서 XML) 보내고 구매사, 판매사가 각 은행 인터넷 뱅킹에서 거래를 완료하면 우리 쪽에 결제 통보 전문을 수신하고 거래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를 받는 회사였다.
우리 회사의 슈퍼 갑은 기금(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과, 보험(서울보증보험) 이였으며 해당 보증서를 받은 구매사가 거래를 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갑은 은행이었다.
IMF 때 기업들이 백지어음으로 거래를 하면서 줄도산이 났던 시대를 지나서 B2B 대출보증, 담보보증이 활성화되었으며 그 당시 (2007년) MP사 경쟁업체가 16개 정도 되었다.
우리 회사는 업계 3~4위 업체였다.
원래는 모기업의 작은 B2B 사업부였다가 생각보다 수익이 좋아서 회사를 따로 분사한 케이스였다.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회사가 컴퓨터 부품 계열 회사와 B2B 회사였다.
개발 환경은 언어는 ASP(Active Server Pages), JAVA가 혼용되어 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ASP 사이트 하나만 운영하다가 조금씩 JAVA로 바꿔나가는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ASP는 윈도우 서버에서 사용하는 언어였으며 서버는 윈도우 서버 IIS (Internet Information Services) 세팅되어 있고 COM+라는 컴포넌트에 프레임워크를 설정하여 사용하였다.
JAVA는 기본적으로 JSP(Java Server Pages)이며 소스 구조는 JSTL(JSP Standard Tag Library)
DB(DataBase)는 MS-SQL
DB를 연결 툴은 PowerBuilder를 사용하였다.
물론 이렇게 개발 환경을 깊게 알게 된 건 경력 4년 되었을 때이다.
신입 때는 쿼리는 김D님, 김G님이 짜주시고 그저 JSP 코딩만 했던 것 같다.
경영지원팀에 차장급 한 분이 계셨다.
너무 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팀 신입 다섯 명에게 계속 심부름을 시켰다.
심부름의 메인은 나였고 차 심부름부터 사무 용품까지 나의 하루는 잡일 80% 개발 20%이었다.
집중할만하면 계속 잡일을 했다.
이B님이 대기업 전용 B2B사이트를 개발하는 목적으로 대기업 위주로 기술영업을 많이 하였다.
혼자 가기 적적하다며 우리 신입 독수리 오형제 중 한 명을 무조건 데려갔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였다.
정말 자기 마음 내키는 데로 한 명씩 골라서 데려갔었다.
외근 나가는 게 결코 좋지 않았다.
좋은 얘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맨날 반말에 욕만 하셨던 분이어서, 외근 나가는 것보다 잡일하는 게 더 좋았다.
경력 3년 까지는 항상 정장 차림으로 다녔다.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이B님의 차 안에 가서 앉아있는 일이었다.
항상 불법주차구역에 차를 대 놓아서 그 당시엔 사람이 안에 있으면 딱지나 견인은 안 하던 시기여서 출근하면 바로 차 키를 들고 이B님의 차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때 당시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참 재밌게 시간을 보냈을 것 같지만 그 당시는 피처폰이라 안타까웠다.
한 달에 한 번 이B님이 영수증 60~70장을 내 자리에 던졌다.
일자별 금액별로 정리해서 지출결의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부장급 청구금액이 초과되었을 땐 우리에게 하나 두 장 주면서 각자의 이름으로 지출결의서 작성해서 계좌로 돈이 들어오면 자기 계좌로 이체하라고 했었다.
이B님이 갑자기 나에게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갑자기 차에 타라며 어디를 열심히 간다.
아파트 같은 곳에 도착하여, 주소를 알려주면서 트렁크를 연다.
그리고 과일 박스를 배달하라고 한다.
알고 보니 명절 전에 부사장님 ~ 임원 급에게 과일 박스를 돌리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렇게까지 해서 잘 보여야 하는 건가?" 란 의구심이 생겼었다.
이B님이 가끔 포스트잇으로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나에게 화분을 주문해서 쪽지에 있는 주소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항상 산세비에리아를 주문하였다.
알고 보니 현재 대기업 연동한 거래처 담당자의 진급 소식을 들으면 화분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B는 진정한 영업 사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B님이 점심에 나가기 귀찮다며 나에게 김밥 심부름을 시켰다.
김밥 두 줄에 오렌지 주스 참 식성이 특이하다.
다 같이 점심을 먹고 김밥 두 줄에 오렌지 주스를 사가지고 이B님에게 드렸는데 갑자기 젓가락을 집어던진다.
"야 XX 이거 어디서 사 왔어!! 에이 XX!"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있으니 자기가 먹던 김밥이 아니란다.
그 당시 회사가 용산 원효대교 북단 쪽이었는데 용문시장 가기 전 골목에 있는 김밥이어야 한단다.
참 어이가 없다.
이걸 내가 죄송해야 하나 싶어서 앞으로 거기서 사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회식은 항상 대패 삼겹살이었다.
나와 최S(나의 선배) 항상 삼겹살을 굽는 역할이었다.
정말 굽는 역할만 했다.
구우면 족족 없어지니 빈속에 소주만 계속 마셨던 것 같다.
최S(나의 선배) 입사 당시 주량이 소주 3잔이었는데 주량이 3병이 되어버린 웃픈추억이다.
그때의 한이였는지 회식을 가면 나와 최S는 이B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초반에 안주를 열심히 먹는 버릇이 생겼었다.
1년이 지났을 즈음에 JSP 코딩은 많이 적응하여 반복되는 업무가 되어버렸다.
대기업 연동이 많아서 신입인 독수리 오형제에게 하나씩 맡기게 되었다.
시간은 일주일, 아무리 반복적인 업무가 되어도 일주일은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3일은 새벽까지 야근하고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출근하였다.
아직도 생각난다, 새벽에 불 꺼진 시내 거리가.
나머지 2일도 야근은 동일하지만 차 끊기기 전엔 퇴근하여 집으로 갔었다.
이런 생활을 3년간 계속하였다.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도 극복했고 지나고 보니 우리 팀 사람들과 팀워크도 생기고 공적으로 사적으로 많이 돈독해졌고 대기업 연동이기에 내 이력서의 커리어는 정말 화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