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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 봄 Sep 19. 2024

이스오타 : 주띠주녹띠파파띠녹갈띠갈

중소기업 신입 ~ 3년의 이야기


랜 공사


회사가 계속 성장함에 따라 신규 직원 채용이 점점 늘어났다.


새로운 팀도 생겨났으며 입사 당시엔 14명에서 30명, 30명에서 50명


인원이 많아질수록 사무실에 자리 이동이 잦았다.


잡일은 언제나 우리 팀 사원급인 다섯 명, 역시나 자리 이동도 우리 다섯 명이서 파티션도 옮기고 랜 공사도 우리 다섯 명이서 했다. 


주띠주녹띠파파띠녹갈띠갈

15년 전이지만 내 머릿속에 새겨져있는 문장이다. 


그렇다, 랜 케이블 선을 배열하는 색상 순서이다.



항상 자리 이동 예정 자리 배치도가 나오면 우리 독수리 오형제는 미리 랜 케이블 2박스, 랜선 엔드 캡, 캡을 집는 도구, 선을 숨기는 몰딩 폴대도 넉넉하게 사서 준비를 해두었다.


주말에 출근하여 랜 공사를 할 때마다 사원 선배들인 진S, 영S, 동S는 "나 이번에도 랜 공사 시키면 당장 나갈 거야" 하며 항상 투덜대지만 현실은 건물 옥상에 올라와서 랜 케이블을 펼치고 길이를 가늠하여 미터별로 20~30개씩 절단하고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


처음 할 때는 손이 야무지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미련했을지도 모른다.


랜 케이블을 만들면 가끔 인터넷이 안될 때면 엔드 캡 쪽에 선이 잘못 들어갔는지, 깊게 안 들어갔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반대편을 자르고 새로 선을 엮는다.


그래도 안될 때는 반대편도 자르고 새로 선을 엮었다.


생각보다 나와 최S(나의 선배)가 실수를 많이 해서 인터넷이 안될 때면 여러 번 자르고 새로 선을 엮어서 엔드 캡을 만들다 보니 손끝이 너무 아려왔다.


이렇게 랜 공사를 4번 정도 하고 우리는 이 장비를 두 개를 샀다.


그것은 바로 랜선 테스트기!! 



양쪽 캡에 끼어 넣으면 초록불이 1, 2, 3, 4 점멸하면 성공이고 중간에 초록불이 안 나오거나 빨간불이 나오는 쪽이 있다면 그쪽 엔드 캡만 자르고 다시 만들면 되는 거였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초반에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우리 다섯 명 모두 바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걸, 우리 다섯 명은 100%의 정확도를 손끝에 가져버렸으니 하하하


우리 독수리 오 형제는 랜 공사를 하면서 네트워크 전문 업체 부럽지 않게 케이블이 대략 몇 개가 필요한지, 몰딩 폴대를 어디로 해야 직원들이 걸을 때 거슬리지 않는지, 선 정리를 예쁘게 하게 되면서 개발자에겐 필요 없는 스킬이지만 나름 패시브 스킬을 얻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력 3년 꽉 채운 시점에서 직원이 60명이 넘으면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해당 건물 시설팀이 존재하여 우리의 랜 공사도 졸업을 마쳤다.


가끔 기획팀에서 데이터 추출을 위해 IP 대역대가 틀려서 천장 타일을 뚫어서 랜선을 당겨온 적은 있지만 예전처럼 사무실 전체를 뜯어내는 랜 공사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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