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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Oct 24. 2021

엄마 냄새

저녁을 먹고 야구 보고 앉았는데, 엄마가 왔다.

“마트 갔다가 옥수수 좋아보이길래. 너 옥수수 좋아하잖아. 나는 이거 먹으면 되니까. 저녁 또 차릴 거 없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왔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옥수수 반쪽을 입에 물고, 집을 나섰다.

"나 운동 좀 갔다올게"

잠시 후, 따라 나온 엄마와 나는 집 앞 벤치에 앉았다. 요즘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아들을 보러온 것이다.

“알았어요, 알았다고. 나 괜찮으니까 그냥 좀 둬요. 내가 뭐 애도 아니고.”

나는 엄마의 걱정을 짧게 끊어 버리고 이어폰을 꼽고 일어났다. 아무데나 걸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서늘해진 바람사이로 비 냄새가 들어왔다. 손을 뒤집어 물방울을 느껴본다. 메시지가 왔다. 장문이었다.


'아들아. 힘들고 아픈 마음 훌훌 털어버려. 지난날 어려울 때 죽을 것 같았어.  

너는 아프지, 돈은 없지. 앞이 캄캄해 하루 종일 인형 대가리를 붙여도 천 원짜리 한 장뿐.

밤에 잠도 안자고 일도 했지. 너를 떼어놓고 다닐 때 피눈물을 흘렸어. 이제는 차고 넘치니.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마음이 슬펐다. 혼자라도 떠나라. 인생은 그냥 지나간다.'


“네 걱정마세요” 

답장을 보냈다. 못난 심보가 올라온다.

‘쳇, 나도 다 안다고. 이러다 다 지나가 버린다는 거’



엄마는 늘 바빴다. 이른 새벽, 나는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 앞에 앉아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를 본다. 엄마는 짙은 갈색 체크무늬 투피스 차림이다. 그것은 출근복 이었다. 사계절 내내 입었으니까. 엄마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새벽같이 718번 좌석 버스를 탔고, 내가 잠든 늦은 밤에 돌아왔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가 쉬는 날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날만 기다렸다. 그것은 천국 같았고 꿈결 같았고 그 날 그 날이 생일 같았다. 우리는 주로 명동 같은 데를 갔다. 미도파 백화점에서 옷도 사고 장난감도 사고 롯데리아를 먹었다. 가끔은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는데, 엄마가 보고 싶은 어른의 영화였다.

서울 구경, 맛있는 거, 장난감, 모든 것이 좋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웃어주는 사람이었고, 혼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또 엄마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 날 나는 유치원을 못 갔다. 또 편도가 부어서 그랬다.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를 보며 옥수수를 먹는데 전화통이 울었다. 내가 받았다.

“아들 일어났어? 엄마 여기 미국이야. 고모 말 잘 듣고, 잘 지내고 있어. 엄마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미국이 어디라고 그 먼데까지 갔어? 우리나라에도 돈 있어. 나 안보고 살 수 있어?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 엄마. 엄마!'

서랍장을 열었다. 엄마 투피스가 들어있다. 실감했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엄마는 다음해 크리스마스에 돌아왔다. 

나는 그날, 새벽부터 깨어, 지금 몇 시냐고, 늦으면 안된다고, 빨리 가자고, 아빠에게 칭얼대었다. 

우리 가족은 새벽밥을 해먹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장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빨간 바지에 가죽재킷을 걸친 그녀. 조금 낯설지만, 엄마다!.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 엄마!"

이 순간을 늘 상상했다. 멀리서 부터 달려와 '너무 보고싶었어' 하며 내 볼에 입 맞추는 엄마를. 엄마는 다른 어른들과 인사한 후, 마지막에 나를 찾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았고, 나도 엄마를 꽉 안아 보았다. 이상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 엄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나, 잠시 자책했다. 하지만 매일 서랍장을 열어 갈색 투피스에 얼굴을 묻어 보았으니, 그럴 리 없다. 틀렸을 리 없다. 그냥 그것은 사라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두 손으로 엄마 손을 꼭 잡고 팔에 기대 잠이 들었다. 행복했다. 부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전화가 온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는 (양화대교는 아니고) 중부내륙고속도로 라 답했다.

“운전 조심하고 다녀. 제발 몸에 나쁜 것 좀 끊고.”

“아이고 참 나. 내가 알아서 할게요. 집이에요?”

"집이지, 애들은? 아픈 데 없지?"

“아무일 없어요. 저녁 드시러 오세요 오늘”

“그럴까? 옥수수 사갈게.”


그런데 기실,

나는 원래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마트 것은 더 더욱.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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