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일부 호사가들 사이에 필독서로 불리며 장장 52주째 베스트셀러 1,000에 속한 책. 그 어떤 불면증이라도 3분 내로 해결해버리는 그 책. 배우 엠마 갓슨도 읽고 싶어 한글을 배우게 만들었던 바로 그 책. ‘오늘의 소리’(이하 ‘오소’) 가 드디어 100쇄를 찍었다. 이처럼 뜻 깊은 날을 뜻 깊게 보내고 싶어 기념으로 몇 가지 고백할까 한다.
먼저, 내가 바로 - 사월 첫 날에 태어나, 무용하나 유용함을 추구하고, 방탕하나 법도를 넘지 않으며, 니체를 끼얹은 카사노바이자, 라스베이거스를 꿈꾸는 강원랜드 우수고객 - 오소의 저자 ‘최굴화’ 다. 많이 놀라셨는가. 드러내지 않는 천성 탓에, 서태지 신비주의를 보고 자란 탓에, 이제야 정체를 밝히게 된 점 매우 송구한 마음이다. 하여 사과의 뜻으로 여러분들이 그토록 궁금해 하셨던 오소 탄생 배경 및 향후 계획에 관해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한다.
사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필요에 의해 집필되었다. 당시 나는 사업 부진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성 불면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것이 얼마나 지독한지, 운동장 백 바퀴 체력을 소진해도, 술로 고주망태가 되어도, 수면제를 한 숟갈 삼켜 보아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했던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놀랍게도 푹 잘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잠들기 전 떠올려 본 ‘그들의 말씀’ 때문이었다.
너무나 교훈적이고 고루한 그 소리 덕분에 나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꿀잠에서 깨자마자 ‘위대한 말씀은 모두와 함께 나누자. 나는 인류애로 충만한 휴머니스트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노트북을 열었다. 그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밤낮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을 리는 당연히 없고, 그 말씀들을 적다보니, 몇 글자 쓰다 잠들고 쓰다 잠들고 하느라 목차를 계획하는 데만 자그마치 3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그 시절 목차를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교장선생님 말씀
* 애국조회 – 나라사랑
* 체육조회 – 체력은 국력이다
* 반성조회 – 한주를 반성하는 토요일
* 입학식, 졸업식 – 작심삼일, 새 마음으로 이 나라의 일꾼이 되자
(중략)
2. 사장님 말씀
* 시무식, 종무식 – 소 띠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 업무회의 –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 드립니다
* 회식 자리 – 그 때 그 시절 무용담
(중략)
3. 모두의 교훈
* 건강의 비결 – 금연 금주, 운동, 적정체중유지, 스트레스 안 받기
* 일 – 근로는 매일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은 나를 찾는 과정이다
* 고난 –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다
(중략)
여하튼 이런 식의 초고를 완성 하고, 기획 의도에 감명 받은 몇몇 출판사와 미팅을 가졌다. 그리곤 그중 비교적 정상적인 지금의 출판사와 출간을 결정하였다. 이것이 오소 비긴즈 이다. 그럼 궁금증이 좀 풀리셨는지.
말 나온 김에, 특별히 기억나는 소소한 일화를 떠올려본다.
기업기밀이라 밝히기 좀 그렇지만, 하루는 S제약 기획실 과장으로 근무하는 절친이 급히 찾아왔다. 회사가 불면증 관련 약을 개발 중인데, 오소를 요약해 카드 형태로 약과 함께 동봉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만년 과장 내 친구 승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승낙했고, 이것이 여러분이 아시는 히트상품, ‘꿀잠 보조제 - 잠 오소 서’ 가 탄생한 배경이다.
후에 친구가 말하길, 사실 평범한 비타민제에 오소 카드가 전부였다고 한다. 친구는 기획의 성공으로 특진과 함께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도 저작권료를 받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는지, 베게전문회사 G사에서 회사의 신제품에 오소의 몇몇 구절을 오바로크 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나는 천문학적인 저작권료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정중히 거절한 바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품 본연의 기능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개발만이 무한경쟁시대에 생존 할 수 있는 길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업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그 회사는 업계 1위의 자리에 올라있다.
어느 날은 우연히 A시청에서 주최하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강사의 강연이 오소의 내용과 너무도 흡사하여, 나는 ‘음, 오소의 애독자 이신가보군, 그나저나 여기 누워도 되는 곳인가’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300명의 청중 중 깨어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렇듯 그 누구의 입을 빌리던, 어디에서 읽히던 말씀의 효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또 한 날은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는지 한 이웃이 집 앞에 근사한 만년필과 쪽지를 두고 가셨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책을 만나기 전에 제가 불면증 때문에 얼마나 고통 받았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러다 오소를 만나고 10년 묵은 잠이 쑤욱 내려갔어요. 저흰 식구 수대로 4권 구입해서 각자 베게 대신 쓰고 있습니다”
오소의 개정판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사실 이분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후 개정판을 기획할 때, 나는 특별히 앞 뒤 표지 속에 두툼한 스펀지를 넣자 출판사에 건의했는데, 책을 읽다 우레와 같은 잠이 쏟아지면 재빨리 베고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독자를 위한 작가의 이런 디테일한 배려, 언론에서 나를 최테일이라 부르는 이유다.
여기까지 듣고 아직까지 오소를 소장하지 못한 자책감에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기 위해 지갑을 챙기셨다면, 안타깝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 나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소를 절판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유를 말하자면, 우선 독자들이 더 이상 오소가 아니면 잠 들 수 없는, 이른바 ‘오소중독증’을 극복하길 원하기 때문이고, 또 반대로 ‘오소증후군’이라 불리는 만성졸음증 환자도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유용한 것이라도 지나치게 의존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 뭐든 적당한 것이 좋지 않겠나. 그들이 자유의지를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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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좋은 말씀들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지 말입니다. 물론, 잠 잘 자는 유용함이야 설명해 뭐하겠습니까. 잠이 보약이고, 보약은 유용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