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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Oct 24. 2021

광석이형으로부터 시작된 센티한 하루

광석이형과 함께 시작한 하루     

월요일 아침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판교 나들목,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울고 있었다. 그것은 중년의 호르몬 이상으로 눈물샘이 오작동 해서, 지난주 한일전 완패가 떠올라서, 혹은 어젯밤 먹다 남기고 온 북경반점 연태고량주가 그리워서, 만은 아니었고 광석이형 때문이었다. 그러게 왜 아침부터 그 형을 만났는지. 

김광석이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첫 소절부터 나의 감정은 네 번째 발가락 둘째 마디부터 솟아올라 가슴을 수제비 반죽하듯 저미고 전두엽을 오뉴월 치마 염색하듯 물들였다. 그러다 마지막 소절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에 이르러 나는 마침내 '어흑 어흑 어흐흑' 하며 오열해 버렸다. 아무튼 이렇게 된 김에, 센티해진 김에, 춘삼월인 김에, 그동안 품고만 있던  진심을 전해야겠다.     

To. 밍기뉴

안녕? 나야.      

미안했어. 

둘째가 태어나던 날. 우리는 함께 병원에 갔지. 본격적인 분만실로 들어가기 전 대기실로 들어갔지. 나는 정말이지 그렇게 빨리 진통 할 거라고 생각 못했어. 그래서 내 딴엔 아주 잠시 외출 했던 거야. 내가 돌아왔을 때 이미 둘째는 세상에 나왔지. 나없는 동안 진통이 시작된 당신은 의사를, 간호사를, 그리고 나를 목 놓아 불렀었잖아. 대기실엔 아무도 없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잖아. 정말 미안해. 설령 셋째가 태어난다면 그때는 꼭 붙어 있을게. 의사, 간호사, 내가 부를게. 고함칠게.     

또 미안했어. 

신혼 때 날이면 날마다 늦은 밤 친구들 집으로 데려왔던 거. 

어디서 주워 온 노래방 리모컨을 텔레비전에다 눌러대던 그들. 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던 당신. 또 주워 온 도로 고깔을 머리에 쓰고 낄낄대던 놈들. 놈들에게 여명808을 따 주던 당신. 나는 정말이지 당신도 매번 즐거운 줄 알았어. 미안했어. 당신에게 그리고 옆집 에게도.      

어쩌다보니, 또 미안.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말이야.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마감을 신경 써 주던 당신. 요즘 핫한 에세이라며 내밀었던 당신. 노트북을 열기만 해도, 잘한다, 응원해주는 당신. 나는 정말이지 당신이 매번 내 글을 기다리는 줄 몰랐어.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 했던가. 알아, 아직 고해할 것이 남았다는 거. 하지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여기서 줄여야겠어. 그러니 오 나의 밍기뉴!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통회하오니 부디 사하여 주오.      

그래도 한 마디만 더 할게. 나 못난 놈이잖아. 헌데 그래도 신랑이라고 믿었고, 믿고, 믿어 줄 당신이 있어 다행이야. 당신이 쉬라면 그럴게. 다 집어치우라면 할게. 용기 내라면 낼게. 일어서라면 그럴게. 울지 말라하면 그칠게. 아프지 말라하면 나을게. 다 시키는 대로 할게.      

P.S :

내일 출근길엔 김경호 형과 함께 해야겠어. ‘먼 훗날 우리~ 같은 날에 떠나~’ 당신도 좋아하는 노래잖아. 그나저나 나는 또 울 것 같아. 이 형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높은 음역에 좌절하게 되니까 말이야.     

from. 당신의 밍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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