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버지랑 입원해계시는 할머니를 만나러 안동병원에 간다. 간병인이 모시고 온 휠체어 탄 할머니를 3층 로비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본 할머니는 많이 수척해있었고 이발 봉사자가 잘라주었다는 머리는 군인의 그것처럼 짧게 잘린채로 여기 저기 뻗쳐있었다.
"아니 대체 머리 누가 이렇게 잘라 놓은 거야. 이게 뭐야 이게. 할매! 나 왔어. 훈이 왔어 할매. 응? 눈 좀 떠봐요. 많이 아파요?"
"내 누군동 모르겠니더. 내 화장실 좀 데려다 줄래요?"
나는 병원 밖으로 나가 낙지 죽을 샀다.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할매! 할매 매운 낙지 좋아하잖아요. 내가 요 앞에 나가서 좀 사왔는데 이따가 저녁으로 드시고. 얼른 기운차려서 집에 가셔야지."
할머니는 안 떠지는 눈을 간신히 뜨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훈이라? 우리 훈이 왔나 우리 장손 왔구나."
우리는 서로를 꼭 안고 잠시 동안 그렇게 울었다.
"할매 나 멀리서 왔는데, 내 알아보지도 못하고 왜 그래요 정말. 머리는 누가 이렇게 잘라놨어. 얼른 기운 차려야지. 내가 할매 좋아하는 시바스리갈도 사다 놨어."
엄마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혈액순환에 좋다며 연신 할머니 귀를 주물러댔다. 담당 의사를 만나고 아버지가 왔다.
"엄마. 아들 왔어. 정수 왔어. 내 알아보겠어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니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뒷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읍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만 편히 모시면..., 나도 이제 내 할 일 다 한 거야."
아내와 안동병원에 간다.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상복으로 갈아입고 영전에 긴 절을 드렸다. 담담한 심정으로 도착하였지만 사진 속 할머니를 보는 순간 북받쳐 올랐다. 바닥에 엎드린 채 흐느끼자 아내가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너무 울면 머리아파. 여기 의자에 좀 앉아봐 응? 자 물 좀 마셔봐."
나는 청심환을 먹으라는 엄마에게 옅은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지들과 인사를 나눈다. 애는 많이 컸는지. 너도 많이 늙었다는 둥. 삼촌은 더 젊어진 것 같다는 둥. 조만간 밥 한번 먹자는 둥. 등등.
입관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30년 전 당신이 직접 준비해두신 옥색의 수의는 곱디 고왔고, 아팠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번 나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서러움인지,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 모를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안녕을 빌었다.
코로나로 조문객을 받지 않아 저녁은 가족 회식자리가 되었다.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우리는 영정 앞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다섯째 금옥이 말했다.
"울 아부지가 막내라 땅 한 마지기 못 받고 살림 시작했잖아. 그 와중에 육이오 터져가지고 아버지 군대 끌려가고 도와주는 사람 없지, 애들 데리고 얼마나 막막 했겠노. 그래 엄마가 애 들쳐 매고 장에 나물 팔러 다녔잖아. 그래도 살기 힘들어가, 고민 고민 끝에 도와달라고 친정에 찾아갔다 카대. 사정을 들은 우리 외 할매가 송아지 한 마리 줬다 카더라. 근데 울 엄마가 나중에 다 큰 소로 다시 갚았다 카대. 울 엄마 참 대단하지."
그러자 막내 성수가 말했다.
"그건 누나 니 말이 맞다. 절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래 버티며 살았던 기라. 그렇게 마당에 누에도 치고 남의 밭일도 하다 보니, 내 국민학교 다닐 쯤엔 살림이 좀 폈제. 마을에서 제일 부자라고 소문 났다. 빚이 없었으니까. 그 왜 빨간 장농 밑에 금고가 있었다. 엄마하고 나만 아는 거였는데, 내가 돈 세어서 엄마한테 주고 막 그랬다. 근데 누나 니는, 엄마 속은 지가 제일 썩여놓고 또 울기는 제일 많이 울대. 불효자는 운다 카드만, 아이고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야 막내이! 니가 뭘 안다고 누나한테 막말이고 어? 누나가 우습나 어? 니 오늘 함 혼나 보까 어?"
"아야야. 알았다, 알았다. 아프다, 꼬집지 마라."
넷째 채옥이 말한다.
"아이고 너들은 안즉도 만나면 그래 싸우나. 나이가 몇 살이고 나이가. 엄마가 다 보고 있다. 천둥 친다 카이."
"하 하 하 하. 깔 깔 깔 깔."
그렇게 그 밤도 지나갔다.
발인. 나는 장례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꼼꼼히 따지고 결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비용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마련해두신 것이라 한다.
검은 리본 장식을 두른 내 차가 선두에 섰다. 나는 할머니 영정을 안고 앞자리에 탔다.
장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계시는 집근처 선산. 우리는 영정을 들고 집에 들러 한 바퀴 둘러보는 의식을 가졌다. 열두 평 촌집은 여전히 그대로다. 살림살이 하나 하나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 싱싱했다.
산 입구 즈음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거리였으나, 발걸음은 무거웠다. 굴삭기가 한창 땅을 파고 있었다. 여러 의식들을 진행했고 식구들이 돌아가며 삽을 들고 흙을 채웠다. 우리는 땀과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리고는 산 중턱 공터에 준비된 비빔밥을 먹었다. 셋째 민수가 말했다.
"와 덥긴 덥다. 삼복더위나 좀 지나고 가시지. 뭐 그래 급하다고. 자 여러분 많이들 먹읍시다. 울 엄마가 사준 밥이라 그런가 더 맛있네."
모든 절차를 끝내고, 다시 주차한 곳에 왔는데 어쩐 일인지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모두 집에 가 계시라 하고 보험회사에 서비스를 요청했다. 날은 덥고 땡볕에 혼자 기사를 기다리자니 진이 빠진 나는 뒷자리에 앉은 채 잠시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내 아들과 아내와 할머니와 함께 있었고 우리는 소고기를 구워놓고 시바스리갈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할머니는 별 말씀이 없었지만 껄껄 웃고 있었다.
도착한 서비스 기사는 도통 모르겠다는 듯 '이상 하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배터리를 충전해도, 점화플러그를 살펴봐도, 연료 인젝션을 만져보아도 차는 깨어나지 않았다. 기사는 기름을 채워보자 했다. 분명 연료는 절반이상 충분했었기 이유가 될리 없었지만, 나는 전화를 걸어 사촌동생이 가져온 휘발유를 채웠다.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 시동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온 내게 식구들이 묻는다, 원인이 뭐였냐고. 나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기름 좀 넣었더니 시동 걸리 대요."
듣고 있던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거 봐라. 기름 떨어지지 않게 미리미리 채워놔야지. 하여튼 준비성이라고는."
억울했다.
"아니, 진짜 기름 있었다니까요. 경고등도 안 들어왔었다고요."
그때 첫째 선옥이 웃으며 말한다.
"야야. 할매가 니 쫌 쉬다 가라고 그랬는갑다. 아니면 나하고 좀 더 있다 가라고 그랬는갑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아내와 먼저 집을 나섰다. 마중 나온 아버지가 웃는다.
"아들, 수고했다. 며느리도 수고 많았고. 올라가서 만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살짝 안았다.
"아버지도 고생하셨어요. 병나지 않게 잘 쉬세요. 술도 좀 그만 드시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가 아빠를 안아본 게 언제였는지 헤아려본다.
내가 배낭여행 다녀와서니까 한 20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