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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Oct 24. 2021

선배 김종간

<선배 김종간>


그는 나의 대학선배로 사계절 바바리코트를 즐기고 왼손엔 노자 오른 손엔 스피노자, 전공족보 대신 김씨 족보를 줄줄 외우던, 실리보다 풍류를 따르고, 방탕하나 법도를 넘지 않으며, 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광산김씨, 그가 김종간이다.


때는 1999년,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던 교정에는 벚꽃 잎이 폭설처럼 내렸다. 나는 그 길을 쓸쓸히 걷다가 매점에서 라면을 짭짭 먹고 나온 그와 운명처럼 마주쳤다. 후배님! 이토록 좋은 날 이렇게 만났으니 어디 좋은데 드라이브라도 가실까? 라고 그가 청하기에, 선배님 저는 수업이 있습니다 거절했더니, 그는 호탕하게 오늘은 인생수업으로 대신합니다! 외쳤다.

그길로 우리는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손을 들어 택시! 라고 외치더니, 기사에게 올림픽선수촌 102동이요 라고 청했다. 택시는 벚꽃이 만개한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정확한 목적지에 안전히 정차했다. 그것이 그가 말한 좋은데 드라이브였고 우리의 하교이자 나의 자체휴강이며 그에게는 귀가였다. 나는 그의 집이 잠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 지갑을 가리키며 덕분에 잘 왔다고 고맙다 눈을 찡긋하더니, 기사에게는 거스름돈은 넣어두라며 기분을 내었다. 지갑을 꺼내는데 눈물이 났다. 석촌 호수의 벚꽃이 나를 베르테르로 만든 탓만은 아니었겠지. 선배 때문이다.


꽃잎은 떨어지고 초록의 기운이 만개하던 어느 날. 나는 얼굴이 하얗고 입술은 빨간 음대생과 소개팅 중이었다. 우리는 쇼팽과 모차르트에서 핑클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주름잡은 음악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녀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기에 어쩌면 오늘 밤 함께 학사파전 입성도 기대해 볼만 했다.

그때 운명처럼 그가 바바리 휘날리며 어디선가 나타났다. 아가씨! 저는 선배 김종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토록 좋은 날에, 껌 사실래요? 이렇게 말하며 그가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풀었다. 그러자 십여 통의 껌들이 테이블 위를 나뒹굴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듯 그가, 집이 어디신지요? 혹시 잠실 쪽이면 저와 드라이브라도... 라며 양 손바닥을 비벼대며 청하자, 음대생은 못 볼꼴을 본 것처럼 얼굴은 아까보다 더 하얘지고 입술은 더 빨개졌다. 그리고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가 지금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라며 울리지도 않은 삐삐를 확인하더니, 힘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선배와 후배는 남은 파르페와 커피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학사파전에 들었다. 나는 평소 그의 짭짭거림이 껌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전 값을 계산하는데 눈물이 났다. 피우던 담배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김종간 때문이다.    


초록이 가고 붉은 빛이 지는 계절은 돌아왔다. 어쩌다보니 오늘도 날이 좋으니 한 잔 해야지 않겠냐는 그의 청에, 우리는 운명처럼 잠실로 향했다. 어느 가라오케에서 그는 능숙한 손짓으로 웨이터를 불러 지난번에 킵 해놓은 걸로!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선배, 이런 사람이었나, 나는 모든 예의를 갖추어 그의 잔을 채워 드렸다. 그렇게 술은 술처럼 들어가 또 다른 술을 불렀다. 계산은 그가 한다기에, 나는 먼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곧 어떤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무대 옆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김종간. 그의 몸짓은 너무도 정확하고 절도 있는 PT의 정석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그날도 거지같았던 종간이었기에, 가게 주인은 무전취식의 죄를 물어 쪼그려 뛰기를 시킨 것이다. 나는 턱을 쳐든 채 당당히, 사장님 여기 얼마요! 잔돈은 넣어두쇼! 라며 내 주머니에서 꺼낸 술값을 주인 면전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눈물인지 땀인지로 범벅이 된 그를 구했다.

우리는 쓰린 속을 라면으로 달랬다. 나는 그가 논산 조교 출신이라는 쓸데없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후후 불어 국물을 들이키는데 눈물이 났다. 신辛라면이라서 만은 아니었겠지. 이게 다 김종간 때문이다.


하얀 눈이 벚꽃 잎처럼 날리던 날, 선배는 졸업을 했고 얼마 후 나도 그랬다. 그렇게 그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님! 잘 지내시지? 전화번호 그대로네! 여기 소록도야 소록도. 그런데 지금 차비가 없어서 말이야. 나를 좀 도와주시겠나.

그는 그렇게 다시 나타났고,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나는 세상 제일 뻔뻔한 사람이 소록도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체 받는 사람 란에 김.종.간. 석자를 쓰는데 눈물이 났다. 왜 그랬는지 이제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그에 관한 기억을 늘어놓다보니, 벚꽃 잎이 폭설처럼 내리는 그 길 어디쯤에서 그가, 후배님! 하며 서 있을 것만 같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살고 있을까. 어쩐지 그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물론 빌려준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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