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 want for christmas
나도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 매력적인 보이스로 따뜻하게, 혹은 달달하게, 간혹 슬프게, 때로 폭발적으로, 대부분 아름답게, 노랫말을 노래하는 참 가수. ‘윤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만약 가요계에 여우주연상이 있다면 그녀가 받아 마땅할 것인데, 수상 소감은 이렇다. 어머 정말 예상치 못했어요. 저는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에요, 천상의 멜로디에 주옥같은 가사를 입혀주신 이 시대의 참 아티스트 최 작가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물론 나만의 상상이다.
피는 음악보다 진하다 했던가. 일주일 전, 중학생 아들이 내게 청했다.
‘윤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가고 싶어요’
윤하를 아니?, 네 이모뻘은 될텐데. 아빠, 노래가 좋잖아요 노래가.
역시 장하다 내 아들. 얼마 뒤 두 장의 표가 나의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출근하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기다리다> <오늘 헤어졌어요> <비밀번호486> 등 윤하의 히트곡을 들었다. 나는 평소 운전중에 시사 프로그램, 오늘의 특징주, 피가되고 살이되는 명언 명구, 숙취 없애는 법, 법륜 스님, 핍진성 있는 소설 쓰는 법 같은 생산적인 방송을 듣곤했는데, 그 날은 다시 음악을 듣는 내가 되었다. 그때로 돌아간 느낌. 좋은 느낌.
그럴려던 것은 아닌데, 나는 어느새 그 날의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사춘기 남자와 사춘기 아들을 둔 남자. 우리는 콘서트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조금씩 말문을 열 것이다. 우리는 삼성라이온즈의 FA 영입, 체스 챔피언 매그너스 칼슨의 탁월함, 또는 르브론 제임스의 꾸준함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아들의 친구관계, 나아가 장래의 꿈과 현재의 소망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른 저녁으로 콘서트장 근처의 특급호텔 뷔페에 들어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배가 아프도록 웃음 꽃을 피울 것이다. 콘서트가 시작되면 다른 관객들처럼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겠지. 더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들은 아빠를 향해 환하게 웃어 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집 앞에 도착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운을 즐기려 밤 산책을 나설거야. 초겨울, 차갑고 상쾌한 밤 공기. 가로등보다 몇만배는 더 밝은 달님이 머리 위를 비추고, 온세상을 덮은 눈송이는 달님의 빛으로 우리 얼굴을 환하게 밝힐거야. 그러다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겠지. 그래 우리의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야. 나의 아들. 나의 아빠.
뭐 이런식의 달달한 장면 말이다. 이처럼 상상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하지만 옛 성현의 말처럼 지나친 상상은 경계해야 했다. 지나치면 기대하고, 기대는 실망을 부를 수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성현은 그랬다.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짧다고. 하루하루를 우물쭈물, 전전긍긍 하다 보니 콘서트 날이 밝았다. 나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하고 어쩌다 보니 그날은 이태리 타올까지 쓰게 되었다. 목욕 온기에 발그레한 얼굴로 손에는 목욕가방, 다른 손에는 바나나 우유를 흔들며 쫄래쫄래 집에 돌아온 내게 아내가 말했다.
‘아들이 콘서트… 친구랑 간대’
그렇다. 아들도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우나 탓인지, 때를 밀어선지 혹은 우유 때문인지, 아무튼 갑자기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벽장에서 약을 꺼내자 아내가 냉수를 건냈다. 먼 거리니까 당신이 태워다 줘. 아내가 덧붙였다.
아들의 친구는 약속한 시간에 집 앞에 와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했고 나도, 그래 네가 정팔이구나 잘 생겼네, 화답했다. 청소년들을 뒷자리에 모신 자동차가 그제 내린 첫 눈으로 질퍽하고 더러워진 도로를 지긋이 밟으며 움직였다. 뒷좌석 아이들의 화재는 모바일 게임, PC 게임, 콘솔 게임이었다가, 운전수를 의식했는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유발 하라리,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로 진화하는듯 하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최신 게임, 프로 게이머 등으로 넘어 갔다.
어쨌거나 우리는 콘서트가 열리는 컨벤션에 도착했다. 나는 비상등을 켠 채 길가에 임시로 차를 세웠다. 아빠는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 여기서부터는 너희들끼리 갈 수 있지?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라. 아들의 친구는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주차를 마치고, 기둥 곳곳에 붙은 공연 포스터의 안내에 따라 나는 홀로, 콘서트 홀hall 앞에 도착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인파 속에서 아들은 그의 친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웃음 꽃이 만발했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 속에서 아들은 반짝 반짝 빛이 났다. 나는 행여 아들에게 들킬까, 기둥 뒤로 몸을 숨기고 카메라의 줌을 당겼다. 그렇게 아들의 시간은 내 눈과 기억속에 고이 담겼다.
공연은 시작되었고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근처 카페로 걸었다.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나의 얕은 숨에도 훅훅 들어와 가슴을 채웠다. 나는 뜨거운 디카페인 한 잔과 가또쇼콜라 한 조각을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빨간색 장식 구슬이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온풍기 바람을 따라 흔들 거렸다. 액자속 에펠탑 위로 비뚤게 써 놓은 Happy new year, 그 옆으로 색색깔 전구 옷을 입은 플라스틱 트리가 반짝였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머라이어 캐리의 친숙한 목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