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by 최도빈

미안합니다

성탄절을 앞둔 월요일 오전의 대중탕은 고요하다 못해 거룩하다.
탕 안으로 몸을 들이 밀자 온기가 척추를 따라 올라 전두엽을 적신다.
하나의 소리가 입을 열고 나온다. ‘으허~’.
나는 수위를 더 올려 물 위에 입, 코, 눈만 동동 띄운다.
팔꿈치로 지지하고 육신을 수평으로 늘어 뜨린다. 가볍다. 최소한의 저항. 나는 조금 자유로워진다.
똑똑똑. 바닥에 부딪히는 물방울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우웅 꾸루루루룩 우웅 우웅. 욕탕 여과기의 둔탁한 진동이 물에 잠긴 고막을 따라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 소리가 아니었기에, 언어가 아니었기에, 나는 여전히 편안하다.
다시 하나의 소리가 나온다. ‘으허~’.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월요일. 일년이면 50여개. 기대수명 80세를 기준으로, 1800개의 월요일이 남았다.
한 주의 시작은 활기 차야 한다. 병든 닭 새끼 모냥 빌빌대며, 오지 않은 금요일만 기다리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자, 저 아래 단전에서 부터 끌어 모은 결기決氣 로 외쳐라.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돌아보라. 지난 주는 어땠는가. 보람 되었는가. 실적은 채웠는가. 자신을 증명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유가, 원인이, 문제가 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깊이 연구하고 고민하라. 반성하는 습관은 네게 남은 1800개의 월요일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어제와 다른 네가 되어라!
자, 일어나, 외쳐라. ‘아카라카 치 치 초! 초! 초!’

물론 내가 한 말은 아니다. ‘영광실업’ 영업3팀 엄도출 팀장의 말씀이다. 나는 엄팀장의 팀원이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부진한 실적을 분석하고 공유하고 반성하고 아카라카 어쩌구를 외쳤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도 나는 여전히 비루할 것이다.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자.
나는 그 어떤 속박도, 자극도, 반성도, 한계도 없는 상태이다.
별안간 어떤 파동이 탕 전체를 흔들었다. 출렁인 물살은 주둥이만 내 놓았던 나의 들숨을 따라 콧속으로 들었다. 켁켁, 코가 매웠다.
무엇인가 탕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도근시다. 안경 없이는 엄마도 못 알아 볼 정도다. 그래도 내 앞에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남자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망막의 조리개를 조였다.
그렇게 고요는 깨졌고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남자는 건장한 체격에 민머리였다. 가슴팍에는 무성한 털들이 당당히 자리 했는데, 그 모양새가 슈퍼맨 가슴에 새겨진 ‘s’ 문양을 닮았다.
그는 외국인이다. 대중목욕탕에 앉은 외국인이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을 눈으로 따라 가다가, 목을 돌려 스트레칭 하다가, 다시 초침을 응시하면서, 나를 향한 남자의 시선을 애써 외면 했다. 그러다 한번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내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의 사타구니 쪽에서 물방울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들은 이내 수면에 부딪히며 사라졌다. 남자는 나를 향해 ‘오 가스! 웁스!’, 어깨를 으쓱 거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못 본 척 다시 시선을 벽시계의 초침으로 돌렸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이! 아임 프롬 캐나다. 마이 네임 이즈 케빈 카터. 디스 이즈 비즈니스 트립.
그럼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때 나는 화답 했어야 했다.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경복궁은 가 봤냐고, 떡볶이는, 불고기는, 손흥민을 아냐고, BTS도 아느냐고, 서태지는 모를 것 같다고, 나는 영업3팀 과장이라고, 실적은 나쁘다고, 계속 나빠질 예정이라고, 엄도출 팀장은 알 필요 없다고, 아무튼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이런 쓸데없는 소리 라도 전했어야 했다.
왜 그러지 않았냐고?

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엘리베이터 안에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누구도 인사를 건네거나 또 받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편의점에서, 던킨에서, 공원 벤치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사람 있어요’ 같은 형식적인 최소한의 소리만 오고갈 뿐,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물론 대한민국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주변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중 목욕탕에서, 처음 보는, 그리고 앞으로 전혀 볼 일이 없는 사람과, 더구나 알몸인 상태로, 십년만에 만난 옛 친구를 대하듯 반갑게 말을 건네는 일은 아주 드물다(저만 그런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욕탕 캐나디언을 만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엄팅장의 말처럼)이제 나는 어제와 다른 내가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편의점에서, 스타벅스에서, 사무실에서, 또 특별히는 대중 목욕탕에서, 달달하게, 이렇게 말 하리라.
-날씨가 좋아요. 첫눈이 왔네요. 머플러가 잘 어울려요. 넥타이 멋진걸요. 김대리가 우리 팀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엄도출 팀장님은 영원한 저의 등불이세요. 가슴털이 슈퍼맨 같아요. 아무튼 모두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아카라카 초초초! 또 하나의 월요일을 맞았다. 나는 카탈로그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들쳐메고 사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내 발길이 닿은 곳은 이번에도 대중 목욕탕이었다. 오늘의 명분은 감기 몸살이었다.
월요일 오전의 탕은 여전히 고요했고 몸을 들이밀고 주둥이만 내놓고 ‘으허~’ 소리를 내었다. 그 때, 물이 출렁였다. 남자가 들어 왔겠지. 락커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를 어깨로 늘어뜨린… 남자였다. 무성한 가슴 털들은 이번에는 배트맨의 박쥐 형상을 닮았다.
오! 외국인이다. 나는 벽시계의 초침을 따라가고 목을 돌려 스트레칭 하지 않았다. 나는 부드럽게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앞니가 활짝 드러나도록 미소 짓고 말했다.
-하이!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사타구니 사이로 물방울들을 만들었다. 나는, 웁스, 마이 가스, 하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남자의 얼굴은 더 굳어진것 같았다. 내가 덧붙였다.
-웨얼 아 유 프롬?
이 질문에는 남자가 답했다.
-‘진주’.
어쩐지 신이 난 나는 더했다.
-오! 진주! 아이 노우 진주만. 하와이. 와이키키. 훌라 훌라 hahaha!
여기서 멈춰야 했나.
-두 유 노우 ‘부곡 하와이’? 코리안 훼미리 워터 파크. 위드 마이 마더, 마이 파더, 삼겹살 쿠킹 막, 워터 슬라이드 막, 다이빙 막, 베리 굿 메모리. 아무튼… 웰 컴 투 코리아. 엔조이 유어 셀프.
더 이상 남자의 화답은 없었다.

나는 목욕을 끝내고 탈의실로 나와 5분 헤어 드라이기에 동전을 넣었다. 위잉.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는 락커를 열어 놓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드라이기의 요란한 소리를 뚫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누나 내다. 기차 시간이 남아 목간에 들렀다. 근데 웃긴다. 쫌 아까 탕에 드갔는데 앞에 아재가 내를 보고 이유 없이 웃더라. 그라더니 물에서 방구를 끼더라. 이게 다가 아이다. 내가 ‘진주’서 왔다카이, 뭔 와이키키가 어쩌구 삼겹살이 어쩌고. 어, 완전 또라이다 또라이. 좌우지간에 서울도 똑같다. 내가 설명 안하믄 맨 똑같다.

그랬다. 남자의 통화는 당신도 나도,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는 내 쪽으로 걸어와 선풍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위잉. 그리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말했다.

-저기 아재요. 우리 아부지가 미국인 선교사입니더. 엄마는 경남 진주 사람인데, 진주 광림 교회서 만나 결혼까지 했지요. 그래가, 내가 쪼매 눈에 띈다 아입니꺼. 내가요 해병 1194기 입니더.

남자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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