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남자가 생의 첫 소설을 완성했다. 그저 노트북에 파일 하나 저장했을 뿐이지만 그는 자신이 정말 소설가라도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홀로 도취하여 안그래도 나이에 비해 일찍 찾아온 갱년기로 감수성이 짙어진 그는 눈밑 애굣살, 정확히는 안륜근이 무너지기라도 했는지 눈물을 펑펑 쏟았는데, 사나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는 그 날의 심경을 일기에 적었다.
‘이것은 한 소설가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이하 말을 줄인 이유는 남자의 교만하고 사리분별 못하는 성격이 드러나 차마 더 소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정말이지 내 자신이 대견하여 매일매일 업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인류 역사에…’
또 그만 하는 이유는 비문非文을 자주 쓰고 비루한 문장력에다 스스로를 업을 수 있는 사람은 실로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자는 소설가는 소설가 다워야 하지 않겠냐며 실천적 계획을 세웠다. 먼저 소설가는 무릇 달리기를 잘 해야 한단다. 이 땅, 그리고 바다 건너 대문호들은 대체로 그러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집필 아니겠냐며, 매일 10킬로미터 달리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이미 퇴행성 무릎을 진단받은 그가 해낼지는 모르겠다.
또한 소설가는 홀로 고요히 명상 혹은 망상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이 또한 대문호들이 그렇단다. 하여 남자는 침대를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더 가치있는 영감을 얻기 위해, 깊은 명상을 위해 그렇단다. 그는 최근에 구입하여 아직 본드 냄새조차 가시지 않은 베트남산 매트리스를 버리고 170년 전통의 스웨덴 해스텐스 침대를 들이려 했다. 그치만 현재 실업 상태인 남자가 그럴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무릇 소설가라면 겉보기에도 문학적이어야 한다며, 초상화 속 대문호 처럼 테가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평화시장에서 미리 사둔 베이지색 베레모를 머리에 얹었다. 그러면서 오래되어 빛이 바래 흐리멍텅한 트랜치 코트를 걸치고, 색소폰 연주자 케니G 처럼 파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르겠다. 전형적인 북방계 얼굴에 흐리멍텅한 눈동자, 축늘어진 뱃살하며 콧구멍까지 짝짝이인 남자가 이런다고 문학적인 향기를 풍기는 건지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가 막히게도, 남자가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을 전할 내가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여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다만 당신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낸다면 남자의 많은 것을 보게 될 터이니, 그때가 되면 상황을 봐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남자는 그깟 단편소설 하나 쓰고는 이리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현실은 누구도 그를 소설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의 말처럼 자신을 업고 다닐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남자도 그정도는 인지했는지 자신의 소설을 만방에 알릴 요량으로, 한 출판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출품했다. 남자의 일기 중 ‘출품의 변’을 가져오자.
‘내가 이 소설을 세상에 선보이는 이유는, 그깟 상금 몇 푼을 탐해서가 아니다. 또한 나의 사랑, 나의 여신 윤여름에게 어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저 한 평생 아들 하나만 보고 살아오신, 여전히 그러신, 앞으로도 그러실, 우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소망한다. 많은 이가 나의 소설을 읽기를. 읽어 주시기를. 하여 유구한 역사를 뒤로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나아가야 할… 유발 하라리가 그랬던것처럼…’
부끄러운 그의 일기를 전하자니 나도 부끄러우나, 한편으론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의 소설을 간략히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박정팔’이다. 창작자인 남자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나도 안다. 이 얼마나 해괴한 짓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소설은 작가의 세계이기에, 그의 소설은 그의 세상이니까. 하여간 박정팔은 (현실감각, 경제감각, 경영감각, 유머감각을 제외하고)근면/성실/명민/순수/선의 같은 온갖 좋은 것들로 포장된 주인공인데, 어쩌다가 우연히 ‘원죄’(본명 정원재)라는 인물을 만나 땅속으로 흐르는 유황 물길을 발견하고 유황천을 세우고 팔도 제일 유황천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피 튀기는 경쟁과 소용돌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 뭐 그러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는 했지만, 핍진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아무튼, 새 시대, 새 희망을 말하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작가에 따르면, 헤겔의 정/반/합이 비견 될만 하다고 한다.
어떤 일에, 어떤 분야에, 어떤 바닥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음 생각 보다 할만 합니다. 이것이 초심자의 행운인가요. 아니 아니죠, 모두에게 깃든 행운은 행운이 될 수 없겠지요. 또한 누구나 가진 능력을 재능이라 할 수 없고요. 그렇다면 바로 제가 그 말로만 듣던 천재인 겁니까?’
물론 이 남자, 박정팔이 이렇게 상스럽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했으니 기대하고, 기대하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최측은 공식적인 발표전에 수상자에게는 먼저 전화를 걸어 알린다. 하여,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남자도 묘한 기대와 긴장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남자는 평소 거의 울리지 않는 그의 전화기가 이제는 본연의 임무를, 큰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드디어 전화가 울었다. 남자의 친구 왕종훈이다. 남자의 통화를 엿들어보자.
-여보세요! 어 그래, 왕종훈이구나. 그래서 내가 우수상이야? 아 대상이라고? 아냐 아냐 나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지. 뭐 그게 아니고, 사고를 쳤다고? 오백을 빌려 달라고? 아이고 그런데 어째, 내가 지금 수행중이거든. 계룡산이거든. 여, 여보, 여보세요? 안 들린다고? 나도 안 들릴 것 같은데!! 그래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사실 왕종훈은 늘 이런 식이다. 물론 우리의 남자도 이런 식이고. 자기의 말만 하는 인간들.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였다. 지역번호 02, 국은 760으로 시작했다. 출판사가 있는 마포구 망원동이다.
-여보세요! 네 제가 박정팔입니다. 소설 주인공과 제 이름이 같아 당황하셨어요? 워낙 흔한 이름이라 무리가 없지 싶습니다. 한국문단을 이끌 기대주라고요? 아이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고 삼진은행이라구요? 퇴사를 하셨으니 대출 원금을 상환하라구요? 그래도 일시 상환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요?
사실 은행도 늘 이런 식이다. 비가 오면 신고 있던 장화를 빼앗아 간다 했던가. 남자가 실업자가 된 사실을, 그럼에도 잘난 소설이나 쓰고 앉아 있는 사실을 남자의 엄마, 평생 아들하나 보고 사신 엄마는 알지 못한다. 물론 왕종훈도 몰랐을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삼진은행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남자의 기대는 약간의 우울로 변해갔고, 망상은 정상이 되어 갔다. 출판사 비슷한 전화도 없었다. 그저 그의 실업을 걱정하며 대출을 권유한 김미영 대출 팀장 전화외에는.
그러다 전화기가 또 울었다. 왕종훈도 삼진은행도 엄마도 아니었다. 그는 차분히 수화기를 들었다.
-맞습니다. 일단 제가 박정팔 이고요. 그쪽은 출판사가 아니겠죠? 대상도 우수상도 당연히 아니겠고요. 그쪽은 사고를 쳤거나 제게 돈을 구할 생각인가요? 실업 상태도 맞구요. 김미영 팀장 이시라면, 매번 말씀드리지만 대출 안받아요. 지금도 충분해요.
남자의 이런 호들갑에도 전화기 너머 상대는 차분히 자신의 말을 전했다.
-정원재라 합니다. 귀하께서 쓴 소설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귀하의 소설에, 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 정원재가 살아온 역사가 실려있다는 말입니다.
저를 아십니까.
어찌 제 인생을 쓰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