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비는 자유예요!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은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서 이 문장이 이렇게나 유명한 걸 알고 있을까?
마법사 말포이 가문에 소속된 집요정 도비는 끝없는 노동과 학대에 지쳐서 비쩍 마른 체구에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비는 해리포터의 기지로 루시우스 말포이의 실수로 헌 양말을 받고, 집요정에서 해방된다. 집 노예에서 해방이 된 도비는 사실은 엄청난 능력자였다. 도비는 곧바로 쿨하게 주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사라진다. 나중에 도비는 해리포터가 위기에 빠졌을 때, 자유의지로 해리포터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
집요정이야 말로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이 공간 이동 등의 마법도 자유자재로 부리는 태생이 마법사인 종족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슨 이유인지 자기 인생에 대한 주체성이 꺾인 채로 인간 마법사에게 예속되어 지낸다. 단 하나의 예외는 주인으로부터 옷 종류를 선물 받게 되면, 그게 바로 자유의 증표가 된다. 이러한 마법 세계관의 설정에서 스스로 내린 판단에 따라 해리포터를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결국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도비는 말 그대로 집요정계의 진정한 이단아다.
이러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맥락을 몰라도 도비의 뒤도 안 돌아보는 쿨한 작별인사는 수많은 퇴사자 또는 퇴사 희망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 정말 재미있다.
이직도 퇴직도 어려운 세상이다.
회사에 퇴사에 대한 의사를 밝히게 되면 매우 홀가분할 것 같은가?
나의 이직과 퇴사의 경험을 돌아보면 막상 그 이후의 과정을 겪는 것은 마음를 매우 불편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피로한 일이었다. 회사를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은 단호한 마음이 있다. 정들었던 동료나 그동안 영혼을 갈아 넣으며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을 그만두게 되는 아쉬운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K가 퇴사하는 날, 카톡으로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인사팀에서 회사에서 반납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각 항목 별로 서명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보통 퇴사하기 전에 업무인수인계 완료하고 회사에서 지급한 장비를 반납하고 나면, 마지막 날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그 회사와의 작별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K가 보내온 사진에서 체계적으로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비품까지 꼼꼼하게 작성된 리스트를 보면서, 지금은 퇴사자를 관리하는 프로세스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회사 역시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다 보니,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K의 회사에서 요구한 것은 비품 목록뿐 아니었다. K에게 비밀유지 각서에도 서명을 하라고 했다. 회사로서는 퇴사한 직원으로 인해 기업의 비밀이 유출될 것을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사실, 대부분의 회사에선 직원들이 입사하면서 작성하는 근로계약서에 비밀유지 항목이 기본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K가 다닌 회사의 퇴사 정책이 약간 오버스럽다고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우리가 퇴사할 때에는 반드시 회사와의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고, 그만두고 난 뒤에는 다녔던 회사에 업무적으로 한 치의 피해도 주면 안 되는 게 맞다.
사실 직원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대표나 상사의 입장에선 마냥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혹시라도 그중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퇴사하는 직원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품게 되면, 그때부터 퇴사하는 날까지 껄끄럽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물론, 대표나 상사도 사람인데, 어느 정도는 아쉬움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원의 퇴사를 배신으로 여기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조금이나마 괴롭히려고 애쓰는 모습도 별로 아름다워 보이진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 업무 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일정 등을 서로 잘 조율하는 게 현명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하는 입장에선 어찌 되었든 간에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름의 업무 인수인계에 대한 준비를 하고, 일정을 고려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 역시 퇴사 의사를 밝혔다가 상사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했던 때도 있었다. 퇴사 일자를 잘 조율하는 게 정말로 큰일이다. 회사에서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을 바로 배치하지 못해서 서로 난감해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보통은 원하는 퇴사 날짜로부터 2주에서 길게는 1달 정도의 시간을 남겨 놓고, 퇴사의 의사를 회사에 알린다.
내가 일 년 정도 근무하고 난 뒤에 퇴사를 한다고 하니까, 대표가 아마도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대표는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 퇴사 일자를 미뤄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새로 입사하는 회사에도 입사 일정을 최대한 미뤄 놓은 상황이었다. 당시에 나는 약 6주 정도의 여유를 갖고 퇴사 의견을 전달했었다. 내가 입사일자를 더 연장하자며 재차 조정하는 건, 자칫하면 입사를 희망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 쪽에서도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쿨하지 못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퇴사자들의 마음 역시 왠지 모를 아쉬움으로 가득 차서 무조건적인 해방감만을 느끼는 건 아니다. 퇴사자들 역시 불편을 감수한다는 것을 그만두는 회사의 대표나 상사들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기업의 평판 관리에는 입사 지원을 했던 탈락자들이나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둔 퇴직자에 대한 관리도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정말로 그만두는 실질적인 이유나 회사에 전하는 제안 등을 충실하게 받도록 하는 넷플릭스(Netflix)의 부검메일 같은 퇴사 정책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이론에 불과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다닌 회사에서 실제로 퇴사자에 대한 관리를 하는 회사는 별로 없었다. 퇴사자들을 위한 온라인 웹사이트를 오픈해주고, 필요한 서류 등을 신청하도록 하는 회사도 있긴 했다. 하지만, 단지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뿐이었다. 이를테면, OB(Old Boys) 모임.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퇴사는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 적법한 시간과 절차에 맞춰 의사를 표현하면 성립된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퇴사 의사를 전달하고 나면, 1달 후에는 자동적으로 퇴사가 인정된다. 그러니, 회사와 퇴사자 양쪽이 모두 너무 씁쓸하지 않은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