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린 Jul 03. 2022

뜻밖의 기회와 뜻밖의 결과

이력서가 길어지고, 페이지수가 많아질수록 묘한 자격지심이 생겼다. 나는 왜 떠다니는 부표처럼 이렇게 계속 회사를 옮기는 걸까. 남들처럼 창업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퇴사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회사에서 또 다른 회사로 이동했을 뿐이란 생각이 들어서 한 때는 괴롭기까지도 했다.


그동안 내가 회사를 옮긴 횟수도 많고, 또 계속 뭔가 다른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택해왔기 때문에, 내 커리어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내 이력서를 보다가 문득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회사를 그냥 아무렇게나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 선택한 결과였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너무 급격히 방향을 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검토하다 보니 내 커리어에서는 그래도 일관되게 성장해 온 내용과 몇 가지 키워드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직을 하는 그 순간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에 새롭게 도전했던 결과가 내 이력서를 채우고 있었다.


또 하나는 내가 회사를 옮긴 횟수를 세어보니, 그중의 상당수가 지인의 추천으로 인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지인이 추천을 해줬으나 실제로 회사를 옮기려고 하지 않았거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결국 직장을 옮기는 데에 주변 사람들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지난 십여 년 동안의 나의 경력은 나 스스로 만들어 온 게 아니었다. 


우리들은 뜻밖의 환경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 뜻밖의 기회를 얻어, 뜻밖의 결과를 빚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우연은 필연으로 만드는 능력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이야기하듯 '준비가 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이것을 그냥 대수로이 넘겨버리지 않을 때에 예상이나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하다. 


만약 내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식사를 하면서, '누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고 하는데 너는 관심 없니?'라는 말을 듣고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일을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은 언제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금 나는 내가 과거에 예상했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부단한 노력으로 기대했던 예측 중에 현재에 이르러서도 유효한 건 그리 많지 않다. 앞으로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질수록, 우리들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하기란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어떠한 점을 긍정적으로 여겨서 회사에 추천했을까?


결국 사람들은 내가 매일매일 일터에서 보였던 성실함에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 100% 회사에 헌신하거나 성실하게 모범적인 회사생활을 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한 부분만큼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업무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주변엔 수많은 빌런과 또라이가 머물고 있다. 한편으론, 우리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받으며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만약에 주변에 고민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또한, 오늘 내가 주변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미래의 당신의 모습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일터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음을 깨닫는다. '큰 거 한방'으로 인생 역전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의 인터뷰 중에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어, 이곳에서 공유해 본다. 


Q. 저마다의 인생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드라마를 훌륭히 연출해 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A. 저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실패를 많이 해보니, 실패는 하면 할수록 두렵고 자신감이 없어질 뿐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작은 성공의 경험'이었습니다. 


꿈이 클수록 '큰 거 한방'을 위해 무리하게 모험하지 말고, 본인이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씩 이뤄나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간적으로도 이편이 훨씬 빠를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훌륭히 연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좋은 대본과 캐스팅인데 인생의 대본은 완성된 것이 아니니 캐스팅을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을 바꾸려면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는 말이 있듯, 내가 배울 수 있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뤄 가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티션 너머 가능성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