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기회와 뜻밖의 결과

by 서린

이력서의 페이지 수가 늘어날수록 묘한 자격지심이 생겼다.


나는 왜 이렇게 계속 회사를 옮기고 있는 걸까. 남들처럼 창업을 결심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한때 괴롭기까지 했다.


그동안 여러 회사를 옮기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하다 보니 내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내 이력서를 들여다보며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회사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결과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방향을 급격히 바꾼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내 커리어에는 일관된 성장의 흐름과 몇 가지 키워드가 존재했다. 이직할 때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했던 경험이 결국 내 이력서를 채우고 있었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내가 회사를 옮긴 상당수가 지인의 추천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지인이 추천해줬지만 실제로 옮기지 않았거나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주변 사람들이 내 경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뜻밖의 환경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 뜻밖의 기회를 얻어, 뜻밖의 결과를 빚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우연은 필연으로 만드는 능력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이야기하듯 '준비가 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이것을 그냥 대수로이 넘겨버리지 않을 때에 예상이나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 년간의 나의 경력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누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을 찾는데, 너는 관심 없니?"라고 묻지 않았다면, 새로운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은 늘 예상과 달랐다. 지금 나는 과거에 상상조차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부단한 노력으로 기대했던 예측 중 현재에도 유효한 것은 많지 않다. 앞으로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질수록,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이 나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기에 추천을 해주었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매일 일터에서 보여준 성실함과 신뢰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매 순간 100% 헌신하거나 완벽하게 모범적인 직원은 아니었지만, 어느 한 부분만큼은 좋은 인상을 남기며 업무적, 인간적 신뢰를 쌓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빌런과 또라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주변에 고민을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오늘 내가 주변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터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큰 거 한방'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기보다, 본인이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것이 결국 더 빠르고 안전한 길일 수 있다.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의 인터뷰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어 공유한다.


Q. 저마다의 인생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드라마를 훌륭히 연출해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A. 저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하면 할수록 두려움을 만들고 자신감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작은 성공의 경험이었습니다.

꿈이 클수록 무리하게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이뤄 나가기를 추천합니다. 시간적으로도 이 편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훌륭히 연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대본과 캐스팅입니다. 인생의 대본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배우(주변 사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배울 수 있고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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