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서로의 대사를 모방한다.
영화의 내용을 잠시 설명하자면, 영화감독 지망생 경수는 서울에서 만난 유명한 영화감독의 "사람이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을 다음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따라 한다. 춘천으로 내려온 뒤에는 술자리에서 함께 있던 선배가 몸을 흔드는 버릇을 무심결에 배운다. 일회성 만남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명숙이를 만난 다음에는 다른 여자에게 같은 말을 한다.
비슷한 대사와 몸짓이 한 배우에게서 다른 배우로 옮겨간다. 우리는 서로를 모방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일상도 저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돌아보면, 왜 영화 제목이 '생활의 발견'인지 의미심장하다.
말은 생각을 담는 도구이고, 말을 통해 생각이 정형되기도 한다. 생각은 우리의 말에 담겨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옮겨간다.
말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태도와 철학, 사고방식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이 환경의 핵심이 사람인 경우가 다수이다. 미국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맥크릴랜드는 '통상적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의 95%까지 결정짓는다'라고 했다. 가까이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한 수 임이 틀림없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자주 만나는 사람들끼리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만나고 있는지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의미한다.
누군가 연애를 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할 때에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계속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지는 현상과 관련해서 아주 명쾌한 산술적 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동기부여 강연가인 짐 론은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평균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의 수준은 가장 많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인 것이다. 조상님들에 의하면, 까마귀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말라고 했던가.
나이가 들수록 나 역시 일터에서 누군가가 자주 만나는 다섯 명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하게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에게 주는 영향력과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향력의 두 가지 모두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특정한 사람들로 인해 내 생각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다양한 그룹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