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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n 22. 2022

이민 갈까? 이직할까?

<한국이 싫어서>

기자 출신 소설가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이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 때문에 처음으로 이민을 결심한다. 솔직히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공감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면 100개라도 눌렀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직주근접’이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에서 입지 분석을 할 때 자주 쓰는 말인데, ‘직장과 주택이 가까울수록 주택의 가치가 높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집과 직장과의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좀 작은 평형의 주택이라고 해도 직장과 가까운 곳에 대한 구매자의 수요가 높았다.


주택 가격이 일반 직장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질수록 탈서울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은 여전히 일부 지역에 몰려있다. 그러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고정 시간대에 직장인들의 이동하는 경로는 대략 유사하다. 대중교통 시스템으로는 한정된 공간에서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하니 직장인들은 늘 만원 버스와 지옥철, 교통체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몰려 있는 서울에 비해, 점점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소위 신도시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듯하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 1화에선 경기도 남부 소도시에서 서울까지 왕복으로 몇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에 지친 삼 남매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펼쳐진다. 이들이 퇴근할 때면 일터의 스트레스까지 겹쳐진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으며,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결국 무표정해진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그저 안타까웠다.

'나 역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출퇴근 시간을 견디는 것이 직장인으로서의 하루 미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 초반의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매일 악명 높은 신도림역에서 사당역까지의 구간을 지나야 했다. 사당역에서 사람들이 한껏 쏟아져 나가고 나면, 몇 초 전까지 함부로 팔을 움직이기도 눈치 보일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차 있던 열차 안이 한순간에 휑해졌다. 그걸 보면, 좀 허탈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로 짓눌리는 불쾌의 기억. 내 영혼이 탈탈 털리는 그 시간만 없다면, 그나마 나의 아침은 훨씬 쾌적할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산뜻하게 치마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치마 좀 살펴봐요.”

내가 입은 녹색 치마에 평소 보지 못하던 패턴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온통 볼펜으로 그어진 선 자국이 나있던 거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누군가의 가방에 있던 볼펜의 뚜껑이 열린 상태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서 있다 보니, 지하철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꽉 끼인 사람들과 함께 반복적으로 같이 움직였던 거다. 그 사이에 뚜껑이 열린 볼펜 심이 가방에서 삐죽이 솟아 나와서 몇 번이고 내 치마 위를 계속해서 크게 왕복했고, 그 결과 일정한 패턴의 볼펜 자국이 남았다.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가 작정하고 낙서한 듯한 볼펜 자국을 보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옷이 망가진 것에 짜증이 났어도 내가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들이 온통 주변을 점령하던 때였다.


그해 봄에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은 금방 잊어버리기에 너무나도 큰 사건이었고, 나는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졌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회사 사람이 세월호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는 아직 TV로 중계된 침몰 장면이 채 잊히지 않던 때였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싫어졌다.


<한국의 싫어서> 소설의 주인공은 호주로 이민을 떠난 젊은 직장인이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비록 이방인으로 살지라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외국에 정착한다.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도 만나게 된다. 이민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았으니 행복한 결말이다.


나는 J에게 회사가 싫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럴 때면 J는 항상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J와 농담처럼 이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 나이에 유학이나 이민은 좀 힘들지 않을까?’라고 해도 J는 끄떡없었다.

“외국에 살면, 너 젊게 살 수 있어. 외국인들은 우리 동양인들이 몇 살인지도 잘 모른다니까. 애초에 나이에 별 관심도 없고 말이야. 게다가 한국인은 다 동안이야.”


나는 이민 박람회를 찾아다니고,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서였다. 나이 제한 때문에 여러 가지로 상황이 나에겐 유리한 편이 아니었다. 도저히 이민의 결과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나 홀로 도전하기는 어려웠다. 가족들도 마음이 걸렸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가족들을 보지 않은 채 먼 타국에 혼자서 살 수 있을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이민까지 생각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직장인으로서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회사와 관련한 나의 경험 중에 좋은 게 별로 없어서 슬펐다. 직장 내의 상하 관계와 갑을 관계, 조직 내의 텃세, 경력사원에 대한 은근한 따돌림과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등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솔직히 그 당시의 나의 일터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지금 회사에선 부서장급 이상의 임원들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그대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게 당연했다. 나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입사 직후에 정년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해도 나는 결코 퇴직할 때까지 이곳의 조직문화를 참아내기 힘들 게 분명했다.


이민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이직을 하면 된다. 이민을 갈 생각까지도 했으니, 나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설정하기로 했다.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 근무 중인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한 사람들은 누구나 어떻게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노력을 덧붙이겠지. 나 역시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마음먹고 ‘버틸 적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 부여를 했었다. 진심으로 내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즐겁게 하려고 애썼었다. 당시에 내가 놓인 환경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면, 일터에서 매일같이 느낀 감정들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면,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알람이 내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내면의 소리를 부정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저 다른 일을 시도하면 된다. 나는 버티고 싶지 않다. 직장이 생존게임이라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버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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