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갈까? 이직할까?

by 서린

나는 실제로 이민 박람회에 가보고, 유학원 상담도 받았다. 현실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와 조건은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로 가족을 두고 홀로 타국에서 살 수 있을까.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이민까지 고민했던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에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위계적인 상하 관계, 갑을 문화, 텃세와 따돌림,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질투…. 솔직히 말해 그 시절의 일터는 차갑고 버티기 힘든 공간이었다.

게다가 당시 회사는 정년이 보장되는 드문 직장이었다. 임원들은 앞으로 10년 이상은 자리를 지킬 게 뻔했고, 나는 그 안에서 숨 막히는 조직 문화를 참고 견뎌야 했다. 입사 초기에 정년 보장이 준 안정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한국이 싫어서>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장편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 때문에 처음으로 이민을 결심하는 대목이다. 솔직히 그 부분을 읽으며, 공감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면 백 번이라도 눌렀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직주근접’이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직장과 주택이 가까울수록 주택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단어 자체가 집과 직장의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평형이라도 직장과 가까운 곳의 수요가 늘 높았다.


하지만 주택 가격이 직장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으면서 탈서울은 가속화됐다. 그럼에도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여전히 서울과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많은 직장인들이 아침저녁 같은 시간대에 같은 경로를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대중교통 시스템이 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늘 만원 버스와 지옥철,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


일자리가 몰린 서울과 달리, 주거지는 점점 외곽의 신도시로 밀려나고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화에서는 경기도 남부 소도시에서 서울까지 왕복 몇 시간을 들여 출퇴근하는 삼 남매의 지친 일상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일터에서 이미 소진된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마을버스 안에서, 집 앞 골목에서 무표정해져 버린 그들의 얼굴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혹시 나 역시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출퇴근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직장인으로서 하루의 첫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사당역까지 매일 오갔다. 악명 높은 구간이었다. 사당역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면, 몇 초 전만 해도 손 하나 뻗기 어려울 만큼 빽빽하던 열차 안이 순식간에 휑해졌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묘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매일같이 사람들 사이에 짓눌리며 보내야 하는 시간, 그 불쾌한 기억만 없다면 아침이 훨씬 가볍게 시작될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치마를 입고 지하철에 올랐다가 낯선 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가씨, 치마 좀 살펴봐요.”

내가 입은 녹색 치마에는 볼펜 자국이 일정한 패턴으로 남아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가방에서 뚜껑이 열린 볼펜이 삐죽이 나온 채,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 내 옷감을 여러 번 스친 모양이었다. 고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옷이 망가진 것을 보니 허탈하고 씁쓸했다. 탓할 대상을 찾을 수도 없었다.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같은 말이 세상을 뒤덮던 시기였다.


그해 봄,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쉽게 잊힐 수 없는 비극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한 동료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을 때, 나는 아직도 화면 속 침몰 장면이 생생했기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무심함이 너무 싫었다. 그때 나는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장강명 소설 속 주인공은 결국 호주로 이민을 떠난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자유로움을 느끼고, 인생의 동반자도 만나며 삶을 새롭게 꾸려간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원하는 삶을 찾았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이다.


나도 그 무렵 J에게 회사가 싫다고 자주 털어놓았다. 그러면 J는 늘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있다”고 했다. 농담처럼 이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지했다. 내가 “이 나이에 유학이나 이민은 힘들지 않을까?”라고 물어도 J는 단호했다.


“외국에 가면 훨씬 젊게 살 수 있어. 외국인들은 동양인 나이에 별 관심도 없어. 게다가 한국인은 다 동안이잖아.”


나는 실제로 이민 박람회에 가보고, 유학원 상담도 받았다. 현실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와 조건은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로 가족을 두고 홀로 타국에서 살 수 있을까.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이민까지 고민했던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에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위계적인 상하 관계, 갑을 문화, 텃세와 따돌림,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질투…. 솔직히 말해 그 시절의 일터는 차갑고 버티기 힘든 공간이었다.


게다가 당시 회사는 정년이 보장되는 드문 직장이었다. 임원들은 앞으로 10년 이상은 자리를 지킬 게 뻔했고, 나는 그 안에서 숨 막히는 조직 문화를 참고 견뎌야 했다. 입사 초기에 정년 보장이 준 안정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이민이 어렵다면, 이직이라는 길이 있다. 이민까지도 고려했으니,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나 역시 버틸 때에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하려고 애썼다. 그때 환경이 조금만 달랐다면,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 알람이 울렸다. “지금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 소리를 외면하며 사는 것은 내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은 버티지 않기로. 직장이 생존 게임처럼 느껴진다면,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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