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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n 21. 2022

서서히 끓는 물속 개구리 신세는 반댈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유명한 심리학 이론이다. 만약 동일한 수준의 이익과 손해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이익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해로 인한 괴로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보통 성공보다 실패가 주는 고통이 더 크고 뼈아프게 느껴진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도전을 꺼리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손실 회피 편향과 관련해서는 뇌과학적인 해석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원시시대의 인간의 뇌는 안전을 위해서, 불필요한 환경 변화나 도전을 꺼리는 방식의 생존 본능을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더 이상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받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원시시대의 뇌와 거의 흡사하다. 즉, 원시시대 인류의 안전지향의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만약 우리가 원시시대의 삶의 방식을 따르며, 계속해서 현상 유지만을 바라고 안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순간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진다.


전 직장은 오랜 역사를 가진 조직이었다. 몇 년 전까지도 특수 전공자로만 이루어진 조직으로, 공채로만 직원을 채용했다. 경력직 사원은 거의 선발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조직도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온라인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온라인 세상이 오프라인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시공간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늙은 조직이 쇄신할 때가 된 것이다. 디지털 업무와 관련한 새로운 직무를 담당할 전문 인력들이 필요해졌다. 결국 당장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력직 사원을 채용하게 되었다. 조직의 필요로 인한 충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직원들이 경력직 사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편견에 가득 차 있었다. 평사원들 뿐 아니라, 공채가 아닌 임원급 직원도 마찬가지로 차별받고 있었다.


중요한 미디어 초청 행사를 진행하던 날이었다. 이슈가 될만한 일이다 보니, 임원급 직원들 십여 명이  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있는 이들 무리로부터  명이  떨어져서 별로 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누가 봐도 분명히 여럿이 뭉쳐서  명을 따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홀로 있는 그 사람은   전쯤 전문가로 초빙한 임원인데, 사내에서 별로 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조직 내의 모든 종류의 텃세를 혐오한다. 잘 뽑은 경력직 사원은 회사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본인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니 여럿이서 한 사람을 배척하는 모양새는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집단 내에서의 따돌림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암묵적인 경고를 날리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너무나도 치사한 방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시대의 변화를 붙잡을 수는 없다. 변화를 수용하는 집단만이 계속 성장하고 살아남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자본 시장이 급등했다. 물론 이전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도 실물자산 상승에 일조를 했다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비해서 격세지감으로 위상이 달라져 버린 부동산 가격을 보면 느끼는 바가 크다.


단순히 국내의 부동산 시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 연방준비위원회의 경기부양 정책은 시장에 넘치도록 유동성을 풀어놓았다. 때마침 가속화된 디지털 시장 질서는 전 세계에 광풍처럼 불어닥친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렸으며, 코로나로 억제된 지출은 주식과 가상화폐의 거래에 더 많은 참여자를 불러 모았다. 이렇게 바뀌어 버린 자산 시장의 질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오래된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장 큰 변화는 노동의 가치보다 자산의 가치가 훨씬 커져 버린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 공기업은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는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신의 직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훌륭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가상화폐 시장과 주식 시장이 커지다 보니 가상화폐 거래소의 직원들과 연봉 순위가 뒤집힌 것은 물론이고, 증권회사의 직원들과의 연봉 간의 격차도 이미 꽤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 공기업 직원들 대상으로 연봉을 규제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확고하게 느껴졌던 금융 시장의 질서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 건 확실하다. 이로 인해 아직 젊은 금융 공기업의 직원들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퇴사까지 감행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분명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기존 질서에만 안주하며 살다가는 큰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개구리를 냄비에 담아 놓고 조금씩 온도를 올려서 변화를 거의 못 느끼게 하다 보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말은 어느새 끓은 물속의 개구리가 되어 버리는 데에 있다.


이미 '전 직장'이라는 호칭에서 다들 눈치챘겠지만, 나는 안정보다는 변화를 택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화처럼 해피엔딩의 결말이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그 때부터 나의 방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고인 물 속에 안주하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는 결코 되지 않을 것이므로.



참고

- 옛 위상 그리운 금융당국.거래소, 서울신문,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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