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끓는 물속 개구리 신세는 반댈세

by 서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을 회피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동일한 수준의 이익과 손해가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기쁨보다는 고통에 더 크게 반응한다. 그래서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의 아픔이 훨씬 오래 남는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보다는 익숙한 길을 택하고,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추구한다.


뇌과학적으로도 이 설명은 설득력을 가진다. 원시시대의 인간에게 생존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뇌는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여전히 안전을 우선하는 습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를 망설이다 보면 어느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의 흐름과 점점 멀어질 수 있다.


내가 몸담았던 직장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채 위주의 채용으로, 특수 전공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경력직을 뽑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있는 조직은 없다. 온라인 세상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의 공간이 되었고, 결국 디지털 전문 인력이 필요해졌다.


조직은 변화에 적응하려 했지만, 내부 시선이 문제였다. 새로 들어온 경력직 사원들은 종종 편견의 대상이 되었고, 때로는 고위 임원조차 그들을 배척했다. 중요한 미디어 초청 행사가 있던 날, 십여 명의 임원이 함께였는데, 한 명만 무리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외부에서 전문가로 영입된 지 1년 된 임원이었지만, 사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직 내 텃세를 볼 때마다 씁쓸함을 느꼈다. 새로운 사람은 신선한 자극과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집단 안에서 배척이 일어나면, 이는 곧 암묵적인 경고가 된다. “너무 눈에 띄지 마라, 변화를 시도하지 마라.” 이런 분위기는 누구라도 위축되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텃세 문화가 단순히 개인을 위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의 개혁과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변화의 씨앗이 싹트기도 전에 눌려 버리니, 결국 조직은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떤 집단도 결국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곳만이 살아남는다.


코로나 이후 자본시장이 급등하면서, 금융 공기업의 위상도 흔들렸다. 한때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곳이었지만, 민간 금융사와의 보상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일부 젊은 직원들은 혼란을 겪었고, 결국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기도 했다.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익숙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반드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흔히 개구리를 냄비에 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작은 변화에 무감각해지면, 어느 순간 큰 변화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호기심이 많은 내 성향 때문에, 나는 안정보다는 변화를 선택해왔다. 그 과정이 언제나 편안했던 것도 아니고, 선택이 늘 좋은 결말로 이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 물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다짐 덕분에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내린 선택이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되지는 않겠다는 마음만은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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