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중에도 나는 항상 부서를 나누는 파티션 너머에 앉아 있는 다른 팀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늘 궁금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직접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뭍고 다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왜 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궁금해했냐면, 내 업무의 특성 상 늘 그들과 협력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각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 건지 협조가능한 한계를 확인해서 업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주로 협력업체를 관리하고, 이들과 잘 협업하는 것이 내 업무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었다. 다양한 회사에서 온 여러 직급의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내가 대리하는 브랜드의 결에 맞도록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나는 신입사원이었지만, 나의 카운터파트너였던 다른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사회경험이 오래된 축에 속해 있었고 대부분 관련 업계의 전문가들이었다. 나의 주 역할은 기획 뿐 아니라, 노이즈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문서를 잘 작성하고, 이메일이나 전화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회의에 참석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다가 회사를 옮기고, 점점 외부의 협력업체들보다는 조직 내의 타 부서와 일을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옆 팀의 직원들과 잘 협조해서 업무를 끝마치는 것이 먼저이고, 잘 안 될 것 같더라도 기한 내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회사가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이 협력하기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함께 일할 때 곤란한 경우가 생겼을 때, 시스템에라도 의존해야 그나마 억울함이 좀 덜 하다. 여럿이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경계에 놓인 일들이 꽤 많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기획이나 마케팅, 혹은 운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 나는 이런 게 좀 억울했다. 여러 부서가 참석한 회의가 끝난 뒤에, 업무 분장과 관련한 결론에 불만족스러웠던 나는 상사에게 왜 그런 일까지 내가 해야 하는 건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일을 미뤄주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가장 잘할 만한 사람이거나 가장 한가해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고 살짝 헛웃음이 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니까.나는 경계에 놓인 일들을 흔쾌히 맡아서 처리할 만큼의 마음 그릇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항상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하는 것인지 수없이 회의감이 들곤 했다.
그래도 체념 반, 호기심 반으로 업무를 하다 보면, 뭐라도 배우게 된다. 하나씩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는 나를 보면, 이런 일들을 서로 미루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고, 세상엔 막상 부딪혀서 할 수 없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에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생각보단 어렵고 복잡한 일은 아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할 만한 일들이라는 게 사람들의 이기심을 발동시키는 건 아닌지 추측해본다.
나는 언젠가부턴 이 일을 맡게 되니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 ‘새로운 업무 스킬을 또 하나 적립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자아를 버리면 나의 가능성이 확대된다고 한다. 나에 대한 고착화된 생각을 버리면, 의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면, 사실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즉, 나는 ‘이런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로 하면 나의 세계 역시 확장이 될 수 있다.
가끔은 나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그동안 나는 창업 초기의 회사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팀에 배정되거나, 사람들이 지금 잘 모르는 일을 하게 된다거나 뭐 그랬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맨 땅에 헤딩하는 것도 운명이다. 맨 땅에 헤딩하는 일하기는 사실 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새로움를 마주하는 것에 대체로 큰 불만이 없는 이유는 인생은 결국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날 데려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무도 언젠가는 쉽게 느껴질 때까지 성장을 계속 싶은 게 내 바램이니까.
파티션 너머를 자주 엿보는 게 내 능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직장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