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힘내세요.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만두시지 말고 견뎌야 합니다. 아시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에 또라이가 있어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반드시 거기에도 또라이가 있어요.”
몇 년 전, 나는 또라이와 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다.
나의 상사이자 부서장이었던 K가 나를 불러서 지속적으로 여러 부서에서 제기되어 온 안건이 있다며 업무를 지시했다. 들어보니 현재 사용하는 제작물과 관련해서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예전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회사의 담당자에게 수정 작업을 의뢰했다.
수개월 동안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은 K에게 항시 공유가 되었다.
구두 보고와 이메일 참조는 물론이며, 업체와의 미팅에도 늘 함께 했다. K는 모든 진행사항을 알고 있었고, 주도했을 뿐 아니라 결정을 내렸다.
우리 회사는 매주 간부회의에서 각 부서 별로 현안을 발표했다. 우리 부서의 현안을 다루기로 했던 날, 그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한 업체의 대표가 직접 발표를 했다.
그런데, 대표의 발표를 듣던 CEO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중간에 보고를 끊더니, 이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하고, 발표의 내용 역시 ‘유치원 수준의 제안’이라고 했다. 결국 ‘더 들을 필요가 없다’며 업체 대표를 회의장 밖으로 쫓아냈다.
나는 모든 의견과 제안에는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펼쳐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향은 틀릴 수 있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정조차 의미를 잃게 되는 걸까?
이 문제가 조직 내에서 제기된 지 오래되었던 만큼 업계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는 게 어땠을지 아쉬웠다. 정책은 추진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표가 가져온 결과물을 그저 채택하라는 게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내용을 함께 검토하고, 새롭게 의견을 정리해서 대표에게 제안 내용을 수정보완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저 상대방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단정하는 것엔 정말 오류가 하나도 없었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외주업체의 결과물이 설사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수치스럽게 면박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우리 조직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발표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회의실에서 쫓겨난, 대표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지 걱정이 되었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했다. 모든 사소한 진행사항까지도 잘 알고 있던 K는 평소 돋보일만한 자리에선 절대로 잠자코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날은 분명 부서의 책임자로 발언권이 있음에도 이런 상황에서도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게 이상했다.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된 걸까?
일이 이 모양으로 된 데에는 우리에게도 실책이 있다는 생각에 나는 회의장 밖에서 대표에게 곧바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대표는 나에게 '이번에는 간단한 수정 작업인 줄 알고 CEO와 직접 인터뷰를 해서 정확하게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과정을 생략했었는데, 이걸 놓친 게 가장 큰 패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미리 CEO의 의견을 들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쨌든 이런 일이 아주 흔한 건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민망하고 불쾌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는 대표를 보며, 멘탈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전에 CEO에게 이런 내용으로 제안 발표를 할 예정이라는 중간보고를 생략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소한 이슈도 보고를 건너뛰지 않던 K가 CEO에게 이번 건과 관련해서는 중간보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 뒤로 우리는 며칠 동안 남은 프로젝트에 대한 수습을 진행했다. 일주일째 되던 날 K가 대표와의 점심 회식자리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찌 되었든 국내 Top 3 안에 드는 전문가로 알려졌던 업체 대표로서도 그날의 기억은 민망한 것일 텐데, 나는 당연히 K가 위로와 사과를 전하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하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막상 점심식사 자리에 참석한 인원은 수개월간 프로젝트를 담당했으며 발표 자리에서 무안을 당하고 쫓겨난 대표, 진행사항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미스테리하게 침묵을 지킨 K, 프로젝트에 관여도가 거의 없었던 두 명의 팀원, 그리고 실무의 총책임자였던 나까지 총 5명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연달아 나왔지만, 나는 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가 대체 뭐가 좋다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도 없는 팀원들까지 함께 이렇게나 많이 왔을까?
‘우리 쪽에서 몇 명이 참석할 거라고 미리 말도 안 해줬는데, K와 나만 볼 줄 알았던 대표는 분명 당황했을 거야. 난 당연히 이 자리는 사과나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마련한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식사를 다 마치도록 K는 아직까지도 대표에게 그런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어.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이야기하려는 거라고 해도 지금 저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게 먼저 아닐까. 저분도 사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일 텐데, 이건 아니잖아.’
끊임없이 쓸데없는 주제로 떠드는 K를 지켜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의 속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내 앞에 앉아있던 대표가 갑자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 것이다.
“팀장님, 힘내세요.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만두시지 말고 견뎌야 합니다. 아시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에 또라이가 있어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반드시 거기에도 또라이가 있어요.”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걱정 마세요. 대표님. 저 이따위 일로 그만두지 않습니다.”
하던 말을 멈추고 우리의 대화를 듣게 된 나의 상사의 벌게지는 얼굴을 보던 그 순간의 통쾌함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K는 자신이 바로 '이곳에 있는 또라이'라는 것을 인지했을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내가 속한 회사나 팀에 또라이가 있어서, 다른 회사나 팀으로 소속을 바꾸어도 그곳에는 반드시 또 다른 또라이가 있다. 혹은 생각 외로 상또라이가 없어서 괜찮은가 싶으면, 고만고만한 또라이들이 여럿이 있거나 새로운 강력한 또라이가 들어오는 것으로 또라이의 총량이 맞춰진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리 찾아도 또라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또라이라는 이야기다.
이건 정말 불멸의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이걸 발견한 사람은 천재 아니면 또라이.
하지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그저 재치 넘치는 말이라며 그저 웃어넘기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나 역시 또라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일터에서의 나는 어땠는지 스스로를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모두를 위한 긍정적인 자정 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법칙이 더욱 의미있다.
나는 아직도 어느 편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강력한 한 명의 상또라이가 있는 조직과 여러 명의 중간 또라이들이 있는 조직 중에 어느 곳이 좀 더 견딜만한 지 말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상또라이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하천의 바닥을 돌아다니며 온통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일터의 좋은 점이 상또라이로 인해 다 가려진다. 나의 불면증이 시작된 계기가 바로 상또라이를 만나면서였다. 회사에서의 상처받은 마음이 달래지지 않아서 잠을 설치다가,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자연에서 고립계의 엔트로피의 총량은 결국 증가하는 방향을 따른다고 한다. 자연계의 무질서는 결국 늘어나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화학작용이 자연계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겠지만,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본다.
별다른 제지 없이 조직 안에 있는 또라이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또라이들과 조직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일터 전체의 무례함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또라이들의 질량이 보존되는 것뿐 아니라, 이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또라이 에너지(=또라이력)이 상승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조직 내의 무례함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면, 쉽게 다른 이들에게도 복제되어 결국에는 그 조직의 문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또라이로 가득한 조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너무 아찔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조직에 오랫동안 있게 된다면, 나 역시 또라이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런 조직 내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피해자의 숫자 또한 얼마나 증가하겠는가.
그러니 서로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일터에서 발견한 단 한 명의 또라이도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