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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l 24. 2022

최악의 퇴사

초여름의 어느 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 외곽에 있는 컨벤션 센터로 외근을 다녀와야 했다. 전날 영업팀으로부터 마케팅팀의 업무 지원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영업팀에서 마케팅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어째 영업팀에서 하기 싫은 업무를 마케팅 팀에게 미룬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마케팅팀이건, 영업팀이건 하나의 조직이었다. 바로 전날 업무 요청을 했으니 바쁘다고 이유를 들어서 요청을 거절해도 충분히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러마 대답했다.


나는 우리 팀원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해서, 현장에 미리 와있던 직원들과 까페에서 간단히 미팅을 진행했다. 우리는 음료를 마시면서, 당일에 해야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같이 준비를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서둘렀다.


한참 일하다가 나는 영업팀 과장인 X가 전시물품을 잘못 배치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X에게 전시물품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앞에 놓인 전시대에 놓일 물품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좀 전에 내가 X에게 잘못 전시되었다고 말해준 물품이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날아오는 물품의 포물선이 생생하게 보이더니 내 앞으로 약 50cm 정도 떨어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잠시 후에 하마터면 날아오는 물품에 내가 맞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찔했다.

나는 X에게 나에게 그걸 던진 거냐고 물어봤다. X는 매우 불만스러운, 하지만 능글능글한 얼굴로 실수였다며, 손이 미끄러졌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손에서 미끄러진 물건이 3~4미터를 직선으로 날아올 수 있는 걸까?'

X의 말을 믿으려면, '모든 물체는 수직으로 낙하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의심해야 했다.


사람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실수 이상이라고 본다. X는 일터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내게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심지어, 나는 X보다 상급자였다.


대화보다는 폭력을 택한 이런 사람을 그냥 봐주는 건 안 되는 일이다. 다음 날, 내가 이 문제를 우리의 상사였던 K이사에게 상의하려 하자, K 역시 예상 밖의 답변을 했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은데요. 그냥 둘이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상태로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사이가 안 좋았던가? 평소에 X가 던지는 농담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오히려 내가 X를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조직의 리더라면, 이런 식으로 방관하기보다는 하다 못해 X를 불러다가 상황을 파악했어야 했다. 당연히 앞뒤 맥락 확인 후에 그에 합당한 올바른 처분을 내리는 게 옳다. 제대로 된 회사였다면, 수긍이 갈만한 별다른 이유 없이 동료에게 폭력을 휘두른 X에게 처벌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K이사는 주말에도 X를 불러내어 일을 할 정도로 신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은 서로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다. 그러니, K이사가 덮어두고 X의 편을 들면서 나한테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결론이라고?’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나는 정말로 무례한 사람들이 일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어찌 되었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과는 도저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없었다. 나는 결단코 어떤 종류의 폭력도 허용할 생각이 없다. 또한, 정의로움이 없는 조직에 단 한 점의 미련도 생기지 않았다. 사적인 관계가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회사에서는 내가 바라는 공정한 처분을 내리는 게 불가능할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그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었다. 정의로움이 없는 조직이니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미성숙한 조직일 뿐이었다.


이것이 나의 최악의 퇴사의 배경이었다. 후회하냐고? 그렇다.  일찍 퇴사하지 것을 후회한다.


사실은 입사가 결정되고, 회사의 사정으로 2달 가까이 출근을 미뤄달라고 해서 고민 끝에 그러기로 했었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하고 보니, 회사 내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솔직히 입사하고 일주일 째 되던 날, K이사에게 그만 둔다고 말을 하고 싶어서 면담을 요청했었는데 오히려 자신을 믿고 일을 해달라고 한 게 K이사였다. 그래서, 내 판단이 성급했을 수도 있으니 좀더 다녀보자고 하고 출근을 계속하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때론, 하나를 보면, 열을 짐작하게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의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는 회사에서 꽤 자주 참는다.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참기 보다는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혹은 생계를 위해서, 지금 당장 아무 계획없이 그만 둘 수 없어서 등등. 우리가 참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참아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맞서야 한다.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성폭력 등 이런 폭력들은 아무리 사소하다고 할 지라도 결국 범죄 행위이다. 우리는 절대로 누군가의 작은 폭력이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범죄를 묵과한 꼴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나 역시 그때 어차피 그만 두는 것으로 마음 먹었는데, 좀더 강하게 일터에서의 폭력이 벌어졌던 것을 알려서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후회가 된다.


정당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에는 상사나 동료로부터 한 소리 듣거나 매도당하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다.


잊지 말자. 세상의 모든 범죄자는 누군가의 이웃이고, 일터의 동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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