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팀원이 어느 식당에 들어 갔는데,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불평을 하고 있었단다. 자세히 들어보니, 모두 '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일부러 찾아간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음식점의 분위기나 음식의 맛에 집중하지 못하고 제각기 일에 대한 불평을 하는 이유가 뭘까? 결국은 '내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원하는 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다들 일을 잘 하고 싶어서, 불평을 한다.
예전에는 나이든 어른들인 회사원들이 상사가 자리를 비우면, '어린이날'이라며 좋아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상사가 휴가를 가서 마주치지 않았던 지난 주는 정말 '어린이날'이 맞았다. 나를 간섭하거나 지켜보는 이가 없으니, 업무 집중도가 오르는 신기한 어린이날! 나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많이 제거되어서 의외로 꽤 업무에 집중하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 '운'과 관련한 책을 읽었는데, '낯(=얼굴)이 밝고 환해야 복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회사에서 마냥 웃고 있을 수가 없다. 자꾸 사람들이 내 자리나 옆 자리에 찾아와서 말을 시키고, 주의를 빼앗아가는 통에 일부러라도 무심한 척을 하고 표정을 굳힌다. '일 좀 하게 내버려 둬.'라는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 그래야 내 눈치를 좀 볼 거 같아서 그랬어. 근데, 이거 나만 이런 거야?'
어린이날 주간이 끝난 이번 주는 컨디션이 급하락하고 있다. 엊그제엔 저녁에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으로 음식물이 역류하는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에 대략 2~3시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목이 따갑고, 입안의 역한 맛을 느껴버렸다. 스트레스 외에는 딱히 증상의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역류성 후두염이다.
일하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일을 해야만, 서로가 편해진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나 협력적으로 일하는 과정 등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다른 경우에는 서로 불편하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어때요?'라고 의견을 개진했을 때에는, 다른 의견이 없는 경우에는 따라주는 것도 조직의 긍정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해야한다는 말이다.
의견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색상이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상대방과 일하는 것은 정말 지친다.
'한 회사에서 핏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일년 정도 노력한 것으로 이 조직을 위한 나의 투자는 이미 충분한 게 아닐까?'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있는 나를 바라보다 보면, 이렇게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낭비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나 아깝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문제로 바라보면 문제가 되고,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바라보면 문제가 아닌 거라잖아.' 나를 다독거리며,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 퇴사한 MZ세대 직원이 남긴 어록이 유독 내 머릿 속을 메아리친다. "지능 순으로 퇴사하는 거에요."
요샛말로 퇴사는 지능 순이라고 한다.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라서 엄청 노력해서 입사했는데,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 영리함이라니.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결과를 보고 싶은데,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이런 나의 열정과 노력, 즉 그릿(GRIT) 이 지능과는 반비례하는 것이라니, 너무 허무하다. 만약 결과마저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실패하는 걸까? 결과가 뻔하게 예상되는 데, 미련하게 매달려 있는 상황이 될까봐 두렵다.
우리 팀은 얼마 전부터 OKR을 하고 있다. 매주 우선적으로 해야할 업무 3가지와 목표 달성에 대한 자신감 점수, 그리고 업무 진행에 있어서 어려운 점을 서로 공유한다. 지난 주에 업무 집중도가 올라서 살짝 꿈틀했던 자신감 점수가 이번 주는 다시 하락이다.
'아직, 이번 주가 끝나지 않았어! 오늘은 수요일에 불과하니까. 할 수 있어...'
이놈의 미련하기 짝이 없는 '그릿'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되어질 수 있도록, 결국은 내가 나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글을 쓰며, 온 세상을 향해 회사에 대한 불평을 남기는 이유도 사실은 '내 일을 잘 하고 싶어서'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행운 중에 하나이다. 물론 연봉이 아주아주 높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고만고만한 연봉을 받는 나로서는 동료야 말로 최고의 복지 중에 하나이다.
번외로, 오늘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가이드가 발표되어는데, 금번 인상률은 2.5%에 불과하지만, 2001년과 비교하면 5배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겠지만, 내 월급은 특별히 물가 인상률과도 크게 연관성이 없나보다 싶은 생각에 오늘 아침에 내가 좀더 다크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천재OOO가 아닌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일하다가 잠깐이라도 옆에 있는 동료를 돌아보는 그런 조직 문화가 우리 사회에 팽배했으면 좋겠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최소한 동료가 공유해준 아젠다와 문건을 검토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자신의 의견을 고르고 회의에 참석하는 태도가 그저 일하는 사람들 간에 필수적인 매너라는 것을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나는 회사는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서 스스로 성장하는 곳이지, 누가 누구를 붙잡아놓고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야,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의무적으로 선생님으로부터 정해진 과목들을 배워야 했지만, 우린 모두 학교를 졸업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