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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 만에 들은 말, “엄마 사랑해.”

202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

by Balbi


아들이 12월 29일 고등학생 형아들과 함께하는 밴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공연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다르다. 두 팀이 합동으로 무대의 전체 시간을 책임지는 단독 콘서트 같은 공연이다.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아들은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남편이 말했다.


“일렉 기타 하나 새로 사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그치, 공연 때 가서 보면 울 아들 기타가 제일 볼품없고 불쌍해 보이더라. 이번 공연 전에 하나 사면 좋을 거 같긴 해.”


그랬다. 공연장에서 다른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이 들고 나온 번쩍이는 기타들을 볼 때마다 아들의 기타가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실력은 아들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 번쩍이는 기타 하나로 실력이 커버되는 듯했다. 무대에서는 연주도 중요하지만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봐도 아들의 기타는 마치 골동품 매장에서 하나 집어온 듯했기에 새로운 일렉 기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공연 전 새로운 기타가 손에 익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사는 게 좋겠다 싶었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생각하고 24일, 홍대에 있는 전문 매장으로 향했다. 가기 전, 틈나는 대로 여러 모델을 살펴봤지만 기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주로 디자인만 보고 골랐다. 내 눈에 멋지다 싶은 기타들은 기본 300~400만 원대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기타를 사주고 싶었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들에게 150~170만 원 선에서 골라보라고 했다.


아들은 여러 모델 중 2~3개를 추려 매장에서 직접 시연해 보았다. 나에게는 모든 기타가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아들은 각각의 소리 차이를 세심히 분석하며 고민했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아들은 컬러로 고민하더니, 내가 과감하게 진한 블루 컬러의 Fender 기타를 추천하자 그 모델로 결정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블루 컬러 바디는 정말 멋졌다.


결제를 마치고 매장을 나서던 녀석이 갑작스레 사랑고백을 한다.


“엄마 사랑해. 너무 맘에 들어. 고마워!”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야이 시끼야, 돈 들여서 뭐 사주니 사랑한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냐!”


백만 년 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중2병 걸린 중2 녀석에게 언제 이런 말을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순간 너무 웃기고 어이없어 이런 반응을 보였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임이 틀림없다.


가끔 중2 아들 녀석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생각한다. ‘내가 덕질하는 리베란테 김지훈, 진원, 정승원, 노현우 그들에게도 이런 중2병 시절이 있었겠지? 그 시기를 잘 넘기면 멋진 아티스트 될 수 있는거지?’ 이런 상상으로 맘을 위로하며 가슴에 참을인 자를 새긴다.


이제 새로운 기타로 무대에서 멋지게 빛날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 한편이 뿌듯해졌다. 이번 공연이 그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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