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느낀 생각의 모음_2
살다 보면 순간의 선택, ‘타이밍’을 놓쳐 후회하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 이 타이밍을 이야기할 때 함께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신중함’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만, 때로는 이 ‘신중함’이 독이 되기도 한다. 바로 타이밍을 놓쳤을 때다. 모든 일에는 그 순간에 맞는 ‘적절한 타이밍’이 존재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오해를 부르거나,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버리기도 한다.
최근 덕주들의 추가 콘서트 소식에서 또 한 번 타이밍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두 팀의 추가 콘서트 발표. 팬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대부분은 갈라콘서트가 9월 초 종료된 후, 새 앨범 준비와 연말쯤 단독 콘서트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일정이라니……
우승팀의 특전이었던 ‘앨범 발매와 전국 투어 콘서트’는 도대체 언제 가능하다는 걸까?
팬들은 지금껏 갈라콘서트로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또 전국 콘서트를 하라니 덕주들 목에 무리 가서 안 된다! 등등 많은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팬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물론 팬덤이라 해도 소속사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BTS 아미 정도의 규모라면 모를까. 팬덤에는 팬덤의 역할이 있고, 소속사엔 그들 몫의 역할이 있다.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봤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각자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팬덤의 목소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기획사도 아무 이유 없이 기습 발표를 했을 리 없다. 그들 나름의 계산과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그려지는 그림은 있다. 그렇다면 팬덤은 팬덤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적절한 타이밍’에 취해야 했다.
그런데 타이밍을 또 놓쳤다.
이럴 땐 너무 많은 것을 재지 말고, 빠르게 대응했어야 했다. 팬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공연 보이콧이다. 관객석이 비어 있는 공연이 과연 가능한가?
공연 발표 직후, 팬들의 감정이 들끓었을 때—그 기세를 몰아 SNS, 성명서 등을 통해 팬덤의 뜻을 모으고 행동으로 옮겼다면 소속사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상황을 보자”, “일단 기다려보자” 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팬들의 열기는 점점 식었다. 어느새 티케팅은 시작됐고, 상황은 흐지부지됐다.
신중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신중함보다 ‘즉각적인 행동’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행동의 타이밍을 놓치면,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사람들의 의견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타이밍을 놓치고 시작된 지금의 이 보이콧도 마찬가지다. 시작한 지 어느덧 20일이 지났지만,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질질 끌고 있다. 팬덤의 입장은 충분히 전달됐다면, 이제는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길 타이밍이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이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가 타이밍을 자꾸 놓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정보 부족’과 ‘두려움’이다.
올바른 타이밍을 선택하려면 충분한 정보와 이해가 필요한데,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결정은 미뤄진다.
또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인해 타이밍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취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거나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행동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 많은 분석과 계획에 집중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다. 때로는 이러한 분석보다 자신의 직관이나 감각을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 자신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인해 올바른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금 이 상황도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여론은 분명 A로 향하고 있지만 순간의 판단으로 그 여론이 전혀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전개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다.
나는 단순한 순간의 즐거움을 바라는 게 아니다.
오래도록 그들의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듣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소모적인 일정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혹사당한다면,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꿈이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