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용한 기념일

by Balbi


4월 18일은 가수 신승훈의 생일이다. 데뷔 시절부터 햇수로 35년째, 나는 조용히 그를 덕질해왔다. 이렇게 오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던 건, 요란하지 않게, 아주 가볍고 조용하게 혼자만의 애정으로 이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아티스트 덕질에 빠져 있을 때 문득 생각났다.

‘어머,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오래 덕질해온 오빠 생일과 데뷔일도 모르고 있었네.’

그렇게 나는 어쩌면 팬 맞나 싶을 만큼 무심한 팬이었다.


그래서 작년 데뷔일부터 기념하기 시작했다. 기념이라고 해봐야 누군가는 카페를 만들고 굿즈를 제작하고 생일 카페를 찾아가지만, 나는 그저 그의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두는 정도다. 오빠의 기념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그의 생일이었던 이날 처음 듣는 노래 하나와 마주했다.

<사랑, 어른이 되는 것>.

웬만한 오빠 노래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는 낯설었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궁금해서 찾아보니, 내가 다른 아티스트를 열정적으로 덕질하던 시기에 발매된 앨범에 실린 곡이었다.


오빠, 미안!
원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움직이는 거니 이렇게 다시 돌아오기도 하잖아.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흘리며, 나는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작사·작곡자를 확인하니 ‘더 필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낯선 이름.

무심코 나무위키를 열었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2021년 4월 16일, 서울동부지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 필름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하고 구속하였다.”


순간 멍해졌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멜로디, 어른스러운 가사를 만든 사람이 이런...

음악과 현실이 이토록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서늘했다.


괜히 찾아봤다. 그냥 좋으면 좋은 대로 들을 걸 그랬다.

아래는 노래 가사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다.

그의 기쁜 생일에, 그의 노래를 듣다가, 뜻밖의 눈물과 함께 깊은 반성의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사랑, 어른이 되는 것>


짧게 말하기 되묻지 말기

어린애처럼 사소한 말투에 서운해 말기

한번 더 듣기 귀담아 주기

당신이 원한 그 말이 아니라 그대 말 듣기


아프지 말기 쉽게 오해도 말기

그대의 얘기 돌려 듣지 말고 그대로 듣기

기다려 주기 자꾸 무언가를 바라지 않기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어른이 되는 것


화내지 말기 우릴 더 믿기

하고픈 말이 차오를 땐 그냥 뒤돌아 웃기

보채지 말기 가볍지도 말기

그대의 단단한 나무가 되어 그늘이 되기


아프지 말기 쉽게 오해도 말기

그대의 얘기 돌려 듣지 말고 그대로 듣기

기다려 주기 자꾸 무언가를 바라지 않기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어른이 되는 것


어른이 되는 것 내게 어려운 것

어른이 되는 것 어리지 않은 것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 앞에 완성이 되는 것


기다려 주기 서툰 걸음 걷는 날 믿어 주기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어른이 되는 것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어른이 되는 것


아티스트 신승훈

앨범 MY PERSONAS

발매 2020.04.08.

장르 발라드

작곡 더필름(The Film)

작사 더필름(The Film)

편곡 정수민(SSMusic)


https://youtu.be/3geRA7a3HIo?si=fN99Sd7AXO3a_o1z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속되었으면 하는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