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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었으면 하는 순간들

by Balbi


살면서 머물고 싶고,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특히 4월이면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일주일 남짓 피었다 사라지는 벚꽃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 수없이 빈다.

‘제발 비야 오지 말아라. 바람도 불지 말아라.’

이 찰나의 아름다움을 단 며칠만 볼 수 있다는 게 늘 아쉽다. 언젠가는 이 벚꽃을 한두 달쯤 지속시킬 수 있는 약이 개발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흩날릴 때, 그 풍경은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이런 모습, 본 적 있니?”

그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와… 너무 예쁘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선물처럼 다녀간 벚꽃의 자리를 어느새 초록의 새잎이 채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점잖은 얼굴로 봄을 이어간다.


나는 그 짧은 4월의 풍경 속에서, 화려함 뒤에 감춰진 긴 기다림을 본다.

화려함은 늘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오래, 묵묵히 자신을 다듬고 있었을까.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살다 보면 그 기다림 속에서 지치고, 중간에 멈추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진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나이를 먹으며 나도 모르게 조금은 운명론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런 노력을 밑바탕으로 누구나가 다 최고의 화려함을 뽐내는 경지에 오르는 경험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아주 일부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그 경지는 어쩌면 신의 세계 아닐까.

욕심과 노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세계.


특히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은 그 ‘화려한 순간’을 평생 꿈꾸며 살아간다.

나의 아이들도 그렇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그 발걸음 속엔 피,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그려둔 모습과는 다른 결과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실망이나 좌절이 아니길 바란다. 최선을 다했고,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면, 그 시간은 분명히 자신 안에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너무 쉽게 나누지 않길 바란다. 무의미한 시간은 없으니까.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아들은 학교 밴드와 고등학생 형들과 연합 밴드를 함께 하고 있다.

3학년이 되어 학교 밴드부를 이끌고 있는 지금, 여러 좌충우돌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가끔 시크하게 툭툭 관심을 내비칠 뿐, 나는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때로는 그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 같아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무언가 느끼는게 있을거라고 믿는다.


형들과의 연합 밴드는 꽤 그럴싸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지난 연말 공연, 최근 촬영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조금씩, 그러나 단단하게 밟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꿈꾸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매 순간 진지하지는 않더라도, 가볍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삶을 설계하는 과정이 조금은 더 단단하고, 조금은 더 깊었으면 한다.



https://youtu.be/Eorh9DTMmTc?si=FcDCcJrA2JAAG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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