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허설

by Balbi


가끔, 아니 종종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의 기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니, 이 문제는 언제나 논쟁거리다.


나와 아들 사이에도 그 차이는 크다.

내가 보기에 녀석은 마치 ‘개미와 베짱이’ 동화 속 베짱이 같다.

‘열심히 연습할 것’이라는 같은 명제를 두고도 우리는 전혀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다.


내 기준에서 ‘열심히’는 엉덩이 붙이고 2~3시간은 집중해서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다르다.

곁에서 보면 내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결국 대화는 산으로 가고, 잔소리가 되고, 호통으로 끝난다. 그래서 요즘은 말을 줄이게 된다.


사춘기 10대에게 ‘열심히’는 어떤 의미일까?

세대 차이일까? 아니면 MBTI 같은 성향의 차이일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 기준에는 못 미쳐도 그 나름의 ‘열심히’로 만들어낸 결과가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잔소리를 줄이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답인지 내 속만 답답할 뿐이다.


애미의 기준에는 못 미치는, 그러나 녀석 나름의 ‘열심히’가 타인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들 주변엔 음악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아들은 자신과 같은 음악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게 마냥 신이 난 눈치다. 형들과 하는 밴드 말고도, 친한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가끔 연습을 이어가는 걸 보면 친구들에게 바람을 넣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하는 음악이 쉽고 재밌어 보이나 보다. 네 주변 친구들이 음악 하겠다는 거 보면.”


지난 주말, 친구들과의 연습 영상을 찍어왔다.

3~4분짜리 영상이지만 꽤 진지하게 연주에 임했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녀석의 ‘열심히’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30분의 몰입이, 또 누군가에게는 3시간의 반복보다 더 깊은 연습일 수도 있다.

나의 기준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참 어렵다.

‘그래도 좀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아들을 믿고 싶은 마음과 엄마로서의 불안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조용한 리허설을 반복한다.


주말, 첫 콩쿨 본선 무대를 앞두고 있다.

정식 무대에 서기 전까지 모든 무대는 리허설이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준비해서, 준비한 것을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리허설을 통해, ‘열심히’의 기준이 서서히 체득되기를 기대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쳐간 바람이 쌓여 만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