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딱지

by Balbi


몇 해 전, 트롯 열풍이 불며 노래 하나가 인기를 끌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늙음’보다는 ‘익음’이라는 표현이 부드럽고 참 좋게 들렸다. 한때는 늙음을 익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음의 너그러워짐, 원숙해짐으로 생각되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과연 나도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가?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모든 상황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유독 아들과의 관계에서는 내 마음은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 간다. 내 글쓰기의 8할을 차지하는 녀석답게, 조용한 일상 속에서 한 번씩 파동을 일으킨다.


아들의 입장에서 갈등이라고 하면 억울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대화가 티키타카가 안 되고, 자꾸만 엇나가는 걸 보면 이건 분명 갈등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잔소리는 늘어만 가고 목소리는 커진다.


엊그제도 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고, 씩씩거리다 잠들었다. 보통 자고 일어나면 화가 잦아들지만 어제 아침엔 잦아들지 않았다.


등교하는 아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 대면대면한 채 녀석은 문을 나섰다.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 집을 나서고 가장 고요한 오전 시간이지만 좀처럼 내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시간을 보내다 낮술 삼아 맥주 한 캔을 따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엄마, 나 아파서 조퇴하려고…….데리러 오면 안 돼?”

“왜? 어디가 아픈데 조퇴까지 해? 목소리는 멀쩡한데.”

“장염인가 봐.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하고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아파.”

“그렇다고 걸어오지도 못하냐?”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데리려 와줘.”

“알았어. 정문으로 나와.”


아프다는 아들의 전화에 걱정은커녕, 냉랭하다 못해 차디찬 말투로 대답하고 데리러 갔다.

아들은 집에 와서도 화장실을 수차례 오갔고, 쓰러지듯 3시간을 내리 잤다.

겨우 깨워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먹었지만, 화장실을 드나드는 횟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흰 쌀죽을 먹고도 토사곽란이 멈추지 않았다. 먹었던 약까지 쏟아내는 모습을 보니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화가 걱정으로 변해갔다.


목요일 하루, 아들은 학교를 빠지고 늦은 시간까지 자며 약으로 속을 달랬다. 시간이 지나니 토사곽란이 멈추고 녀석은 배가 고프단다. 전복죽이 먹고 싶다고 메뉴도 콕 집어 주문을 하는걸 보니 장염이 다 나은듯했다.


“엄마,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집에서 하는 전복죽은 전복이 많이 들어가서 안 되고, 파는 건 전복이 많이 안 들어가서 장염에 먹어도 괜찮데.”


그 말이 어이없어 피식 웃고는, 먹고 싶다는 전복죽을 주문해주었다.

배달 온 전복죽 한 그릇을 깔끔하게 뚝딱 해치운걸 보니 다 나았다.


전복죽으로 기운을 차린 녀석이 저녁 기타 수업을 마친 후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배 이제 괜찮은데 나 햄버거 하나만 먹고 가면 안 될까?”

“아직 안 돼! 죽 해놨으니까 오늘까지만 죽 먹어.”

“무슨 죽인데?”

“와서 먹어보면 알아.”

…….

“엄마, 무슨 죽이야. 먹었던 죽 중에서 제일 맛있어.”

“새우야채죽. 낮에 먹은 전복죽보다 맛있어?”

“어. 전복죽보다 이게 더 맛있네.”


그렇게 절대 식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화는 아들의 장염으로 가라앉았다.

‘장염이 널 살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허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