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사라지기전...

by Balbi


아들은 중3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중학교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내 덕질의 역사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도, 절친이 생긴 때이기도 하다. 아들이 중2병으로 반항을 하고 삐딱선을 탈 때마다 나는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보며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때보다 많은 것이 허용되는 요즘,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가 이해가 어렵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여중으로, 교칙이 주변 학교와 비교해서 많이 엄격했다. 긴 머리는 무용을 하는 친구들에게만 허용되었고, 그 외는 귀밑 2센치 단발이나 커트만 허용되었다. 학생부 선생님들께서 가끔 불시에 특정 반을 급습해서 두발 검사와 복장 검사를 한다. 그 특정 반은 등교 시 많은 학생들이 이동할 때 계단에서 창문을 통해 훤히 보이는 반으로, 가위를 들고 학생부 선생님이 등장하면 전교에 소문이 쫙 퍼져 그 다음 날이면 학생들의 두발이 정리되어 있었다.


복장은 또 어떠한가. 교복을 입지 않던 때였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치마를 입어야 하는 교칙이 있었다. 치마 길이도 무릎 아래 10센치로, 지금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교칙이었는데, 그 시절 우리는 군소리 없이 따랐다.


이 정도 내용만으로 학교의 교칙이 얼마나 엄격하고 빡빡했는지 가늠이 될 테다. 학생인권조례로 체벌이 금지된 지금은 학교에서의 체벌이 사라졌지만, 그 시절 체벌은 당연했고 교육을 빙자한 폭행이 행해지던 때였다.


모범생까지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나에겐 학생부에서의 폭행은 그저 소문에 불과했다. ‘~~했다더라.’ 하는 카더라 소문 정도였다.


그러나 그 소문이 진실이었음을 중3, 지금 아들의 나이었을 때 목격할 수 있었다.

학교에는 소위 날나리라고 불리는 문제아 그룹이 있었다. 그중 한 명과 짝이 되었다. 그 친구에 대한 무서운 소문은 하루이틀 지나며 사라졌다. 대화를 나눠보니 착하고 인간성 좋은 평범한 친구였고, 이제 3학년이 되었으니 날나리 그룹과는 거리를 두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짝은 반 친구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례 시간 학생부의 방송에 날나리 무리 일부가 불려갔다. 그중 짝도 포함되어 있었다. 1교시가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짝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의 종례시간이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걱정을 하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짝은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벽을 붙잡고 기어오다시피 느릿느릿, 어기적거리며 오고 있었다. 반 친구들은 모두 짝에게 모여들었다.


— 왜 그래?

— 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이제야 오는 거야?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짝은 허리 아래부터 발목 위까지 벌겋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치마와 바지로 가려지는 부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짝은 그 후 두 달가량 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너무나 힘들게 학교생활을 했던 기억이, 35년가량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난다.


어린 여학생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휘둘렀던 이유는, 날나리 무리 중 두 명이 가출했다는 것이었다. 가출한 두 명의 행방을 불으라는 거였는데, 당시 짝은 그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던 때였다.


짝의 엉덩이 아래 허벅지는 붉은색에서 진한 보라색, 시커먼 잿빛으로 변해가며 오랜 시간이 지나 제 피부색을 되찾았다.


그 후 졸업하며 짝과 연락이 끊겨 어찌 사는지 알 수 없지만, 가끔 그 시절 그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당시에는 무자비한 폭행에 화가 났지만, 지금 느끼는 분노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50대가 되어 그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가 되고 보니

‘이런 어린애들에게 선도와 교육이라는 핑계로 그런 폭행을 저질렀다고?’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덕질의 시작, 중1 담임선생님이 몇 해 전 퇴직하시고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보며 선생님의 일상을 접하고 있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것 같아 선생님의 글을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폭행을 휘둘렀던 그 선생도 분명 퇴직을 해서 여생을 보내고 있을 텐데, 어떤 모습일지… 절대 평온하고 행복하지 않기를.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받고 반성하며 살기를 바란다. 당시 그 선생의 폭행으로 고막을 상실한 소녀, 허벅지가 피멍으로 물든 소녀는 짝 말고도 여럿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