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 보내야 하는데, 지난 주말은 몸도 마음도 유난히 힘들었다. 더운 여름, 네 식구의 끼니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갑작스레 언니에게서 놀러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커서 각자의 스케줄이 바빠 얼굴 본 지 오래되었고, 마침 아이들 기말고사도 끝났다고 하니 매몰차게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언니네 가족과 막내 동생 가족의 일부가 우리 집에 모였다. 주말 동안 우리 집 네 식구에 다섯 명이 추가되어 오랜만에 복작이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커서 밥만 챙겨주면 스스로 놀기에 어릴 때보단 분명 편해졌지만, 아홉 명의 끼니를 챙기는 일은 더운 여름에 꽤나 고된 노동이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메뉴를 고민하다가 돼지등뼈찜을 하기로 했다. 요즘처럼 물가가 비쌀 땐 가성비부터 따지게 된다. 6~7kg의 돼지등뼈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큰 냄비 두 개에 나눠 1차로 삶고, 두 번에 걸쳐 압력솥에 조리한 후 다시 냄비에 옮겨 간이 쏙 배도록 감자, 양파,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 넣고 끓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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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주방에서 이 과정을 버티려면 에어컨 없이는 불가능하다. 에어컨 온도를 24도로 낮추고 풍향은 최대로 올려 가동하며 요리를 완성했다. 먹고 마시며 오랜만에 수다를 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맥주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내 장과 아들 녀석은 나에게 또 다른 걱정을 안겨주었다.
내 글쓰기, 8할의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이 기타를 치며 자기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기특하고, 대회에서 나름의 성과도 거두고 있으니 믿음이 가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여전히 잔소리와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인지…
지난 대회에서 상을 타고 친구들에게 한턱을 내기로 했던 모양인데,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듯하다. 그 기분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풀지 못하고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한 탓에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자체 해결하라고 두기엔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중학교 입학 후 3년을 함께 지낸 친구들이 이번 싸움으로 원수가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종종 집에 놀러 오고 밥도 함께 먹었으며, 며칠 전엔 남편과 친구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에 다녀오기도 했던 아이들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냥 학교에서만 친한 친구들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서운함과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중간에서 대화를 이끌었다. 이야기를 마친 뒤, 앞으로 관계를 이어갈지 정리할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자, 모두가 “풀고 잘 지내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녀석들이다.
아이들 각자의 마음을 들어주는 동안 내 스트레스는 점점 더 쌓여갔고, 이걸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긴 대화가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1시간 전 도착한 DM이 있었다. 5월 말 공연에서 본 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새싹 아티스트의 메시지였다. 금요일 연주회에 초대한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연주회 일정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무대에 선다는 사실은 몰랐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직접 DM으로 초대를 해주다니. 주말 내내 쌓였던 몸과 마음의 피로가 스르르 사라지는 듯했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나에게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털어내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야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진다.
나이 쉰을 넘기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젊을 땐 스트레스가 몸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에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경직되고 여기저기 쑤시는 게 느껴지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번에는 새싹 아티스트의 공연 초대 덕분에 그 해소가 가능할 것 같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