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 주말마다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그림, 조각, 설치미술 등 미술이 주는 감동과 경이로움은 음악이 전해주는 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깨끗함, 깔끔함, 웅장함, 조용함, 정돈됨, 아름다움...
이런 형용사로 표현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참 좋다. 그곳에서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은 내게 마음의 여유와 풍성함을 선사한다. 감상 후 미술관을 나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워 보인다. 예술 작품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다.
일상에서 늘 익숙하게 보아오던 것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작품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새로운 세상에 닿는다. 그 맞닿음은 때로는 강한 울림으로, 때로는 아주 미세한 작은 파동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덕통사고를 당하듯 ‘넌 오늘 내 작품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야’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렇게 만난 작품이 바로 오지호 작가의 풍경(초추)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하늘이 높아지니 그림이 보고 싶어 찾은 곳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곳에서 로댕 전시회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언제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1985년 7월이었다. 무려 40년 전이다.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예술의 힘은 참 대단하다.
이번에 열린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한 ‘향수, 고향을 그리다’-<2025.8.14~11.9>
수많은 작품 중 나는 오지호의 풍경(초추)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은 없었다. 그저 그림의 이끌림에 멈춰 섰다.
‘대체 어떤 작가의 그림이지? 오지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그렇다. 내가 아는 화가는 기껏해야 박수근과 이중섭 정도였다. 일반인의 수준에 오지호라는 화가는 생소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작품 해설을 꼼꼼히 읽으며 공부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다 순간 꽂히는 작품 하나를 품고 와서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도슨트 설명도 즐기지 않는다. 설명에 기대면 내 감정이 제한되는 듯해 오롯이 작품과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풍경(초추)라는 작품은 초록의 푸르름이 무르익어 가을로 넘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인듯 했다. 그 초록을 보는 순간, 앙리 루소의 그림 속 수많은 초록빛이 떠올랐다. 미술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작품을 미사여구로 해설하는 것도, 해설된 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관람자가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가장 순수한 감상이라 믿기 때문이다.
1948년에 그려진 풍경(초추)는 놀랍도록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문득 궁금했다.
오지호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1905년 12월 24일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1982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연 풍경과 일상의 장면을 밝고 맑은 색채로 그렸다. 그는 빛과 색채를 통해 생명력을 표현했으며, 높은 명도와 채도를 살린 색감, 투명하고 맑은 분위기가 특징이다.
알아보니 그의 아들들(오승우, 오승윤)도 화가로 활동했고, 손자들(오상욱, 오병욱) 역시 3대째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예술 활동에 있어 유전적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졌다.
오지호를 궁금해하다 보니 그의 가족들 작품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단한 화가들이 많았음을. 문화강국 대한민국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