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공연으로 시작한다.
지금껏 수많은 콘서트를 다녔지만,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노래 하나가 주는 설렘이 이렇게 클 줄이야.
며칠 전 리베란테의 미니앨범이 발매되었다.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실망도 크기에 요즘엔 모든 일에 큰 기대를 갖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이번 미니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이런 내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우리말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멜로디만으로 눈물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반복 또 반복, 연속 재생으로 크게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 큰 파동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의 가사를 출력해 더듬더듬 따라 부르며 노래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감성이 충만하던 10대 시절, 그 시대를 풍미하던 오빠들의 노래를 들으며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 이후로는 노래를 들으면 그저 ‘좋다’라는 감정만 느꼈지, 이렇게까지 가슴에 큰 파동을 일으키는 노래는 없었다.
꽂히는 노래를 연속 재생해서 듣는 이유는 당연히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일시적으로 밀려오는 감정의 파동을 잠재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설레는 것을 보면, 이번 노래들은 정말 미쳤다.
공연장 입장. 공연장의 컨디션은 만족스럽지 않다. 의자도 영 불편하고, 좌석 간의 간격도 너무 좁고, 무엇보다 단차가 없다. 앞사람의 머리에 오빠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겠다. 이런 공연장은 처음이라며, 처음 만나는 좌우 관객들과 함께 좌석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둥! 공연시작이다.
미쳤다. 지금껏 이런 공연은 없었다.
이번 공연은 35주년 오빠의 공연을 포기하고 선택한 공연이었는데(티케팅에 실패!), 후회나 미련이 1도 생기지 않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디아만테>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첫 무대부터 공연장의 모든 이들은 감동의 바다에 빠졌다. 그 이후 곡들은 그동안 리베란테의 서사가 담긴 다양한 셋리스트로 구성되었다. 팬텀싱어4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을 이번 공연이 마무리해주는 듯했다.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리더의 군 입대, 4인으로 시작된 팀의 붕괴. 개인적으로는 4인에서 3인으로 팀이 정리되었을 때 큰 상처가 되었다. 그 이후 이들의 노래를 듣지 않았으니, 가수에게는 큰 타격이다. 실제로 이 시기 많은 이들이 휴덕과 탈덕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과 새 미니앨범은 리더 지훈의 전역 후,
‘3인 체제로 이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감동이다.
이번 미니앨범을 단 한 줄로 총평하자면, 탈덕하려는 팬들 머리끄덩이 잡는 앨범이다.
‘가긴 어딜 가니, 좋은 노래 계속 들어야지.’
아티스트에게 애정을 갖고 덕질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잘 생겨서만은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처음의 시작은 ‘덕통사고’처럼 갑작스럽지만, 오랜 시간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별을 앞둔 순간, 결국 우리를 붙잡는 건 본업이 주는 감동이다. 본업에 충실할 때, 그것으로 큰 감동을 안겨주면 우리는 다시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번 미니앨범을 듣기 직전까지 개인적으로 이별을 앞둔 순간이었다. 그러나 노래 하나로 나의 마음은 ‘덕통사고’를 당했던 그 설레던 시간으로 이동했다. 노래 하나로 마음은 크게 출렁거렸다. 이 출렁임이 언제 잔잔해질지 모르겠다. 지금 이 시기에 이 노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준비와 실패를 겪은 지금, 이 노래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다.
공연의 여운과 미니앨범에 담긴 곡들로 남은 2025년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