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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란테 브릴란테 공연 후기

by Balbi


11:30

11월을 공연으로 시작한다.

지금껏 수많은 콘서트를 다녔지만,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노래 하나가 주는 설렘이 이렇게 클 줄이야.


며칠 전 리베란테의 미니앨범이 발매되었다.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실망도 크기에 요즘엔 모든 일에 큰 기대를 갖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이번 미니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이런 내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우리말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멜로디만으로 눈물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반복 또 반복, 연속 재생으로 크게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 큰 파동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의 가사를 출력해 더듬더듬 따라 부르며 노래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감성이 충만하던 10대 시절, 그 시대를 풍미하던 오빠들의 노래를 들으며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 이후로는 노래를 들으면 그저 ‘좋다’라는 감정만 느꼈지, 이렇게까지 가슴에 큰 파동을 일으키는 노래는 없었다.

꽂히는 노래를 연속 재생해서 듣는 이유는 당연히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일시적으로 밀려오는 감정의 파동을 잠재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설레는 것을 보면, 이번 노래들은 정말 미쳤다.



17:30

공연장 입장. 공연장의 컨디션은 만족스럽지 않다. 의자도 영 불편하고, 좌석 간의 간격도 너무 좁고, 무엇보다 단차가 없다. 앞사람의 머리에 오빠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겠다. 이런 공연장은 처음이라며, 처음 만나는 좌우 관객들과 함께 좌석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18:00

두둥! 공연시작이다.



20:30

미쳤다. 지금껏 이런 공연은 없었다.

이번 공연은 35주년 오빠의 공연을 포기하고 선택한 공연이었는데(티케팅에 실패!), 후회나 미련이 1도 생기지 않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디아만테>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첫 무대부터 공연장의 모든 이들은 감동의 바다에 빠졌다. 그 이후 곡들은 그동안 리베란테의 서사가 담긴 다양한 셋리스트로 구성되었다. 팬텀싱어4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을 이번 공연이 마무리해주는 듯했다.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리더의 군 입대, 4인으로 시작된 팀의 붕괴. 개인적으로는 4인에서 3인으로 팀이 정리되었을 때 큰 상처가 되었다. 그 이후 이들의 노래를 듣지 않았으니, 가수에게는 큰 타격이다. 실제로 이 시기 많은 이들이 휴덕과 탈덕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과 새 미니앨범은 리더 지훈의 전역 후,

‘3인 체제로 이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감동이다.


이번 미니앨범을 단 한 줄로 총평하자면, 탈덕하려는 팬들 머리끄덩이 잡는 앨범이다.

‘가긴 어딜 가니, 좋은 노래 계속 들어야지.’


아티스트에게 애정을 갖고 덕질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잘 생겨서만은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처음의 시작은 ‘덕통사고’처럼 갑작스럽지만, 오랜 시간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별을 앞둔 순간, 결국 우리를 붙잡는 건 본업이 주는 감동이다. 본업에 충실할 때, 그것으로 큰 감동을 안겨주면 우리는 다시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번 미니앨범을 듣기 직전까지 개인적으로 이별을 앞둔 순간이었다. 그러나 노래 하나로 나의 마음은 ‘덕통사고’를 당했던 그 설레던 시간으로 이동했다. 노래 하나로 마음은 크게 출렁거렸다. 이 출렁임이 언제 잔잔해질지 모르겠다. 지금 이 시기에 이 노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준비와 실패를 겪은 지금, 이 노래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다.


공연의 여운과 미니앨범에 담긴 곡들로 남은 2025년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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