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고 사색을 즐기는 독자들은 대체로 문학과 인문학을 선호한다. 그러나 한때 나의 책장을 가득 채웠던 책의 종류는 자기계발서였다. 모든 관심이 나 자신에게만 쏠려 있던 시절, 성공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꽤나 컸던 것 같다. 헛된 욕망의 유혹이 내 손을 이끌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관심이 아이들에게로 옮겨가자, 그 자리는 육아서와 인문학 서적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2026년의 첫 책으로 선택한 책은 ‘렛뎀 이론’이다. 모임에서 누군가 좋다고 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고 고른 책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의 장점은 동기부여를 해주고 마음을 다잡는 힘을 준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연초에 읽기엔 괜찮은 책이지만, 읽다 보니 너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해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까지 읽은 지금,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마주친 단어는 ‘내버려두자’다.
책을 읽다 보니 몇 년 전부터 나에게 꽂혀 있던 단어들이 자꾸 떠올랐다. ‘운명’과 ‘팔자’. 젊은 시절엔 몇 백 년 전에 죽은 잔 다르크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전투적인 자세로 “운명에 맞서 싸우겠어”라는 태도로 살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은 안다. 그런 저돌적인 기개와 자세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타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전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첫째가 어릴 때만 해도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16년 동안 육아를 하며 첫째와 둘째를 함께 바라보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자 내 안의 화가 많이 사라졌다. 아이들의 숙제나 공부를 봐줄 때도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둘째는 5학년 수학을 시작했다. 첫째 때의 경험 덕분에 선행과 심화에는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학교 진도에 맞춰 문제집 한 권을 풀며 하루에 한 장씩 꾸준히 해나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둘째는 혼자 문제집의 개념을 익히고 문제를 풀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며 진도를 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계산에서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눗셈 부분이었다.
“엄마, 나눗셈을 오랫동안 안했더니 어떻게 하는지 까먹었어.”
“음, 그럴 수 있어. 몇 번 해보면 생각 날거야. 괜찮아. 설명해줄게. 자, 봐봐.”
아주 천천히,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둘째는 내 설명이 학교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내 욕심을 내려놓고 화를 내지 않은 덕분이다.
첫째의 공부를 봐줄 때는 왜 그리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걸까. 결국은 내 욕심이었을 것이다. 내가 주는 대로 아이는 군소리 없이 받아먹을 거라 생각했던, 무식한 초자 애미의 자세였다.
욕심을 버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주고, 그것을 받아먹든 버리든 ‘내버려두자’고.
받아먹는 놈과 버리는 놈, 다 본인들의 운명이고 팔자다.